연상호 SF '정이', 비범한 아이디어와 평범한 주제(ft.모성애) [시네마 프리뷰]

정유진 기자 2023. 1.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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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이'라는 타이틀은 SF 영화의 제목 치고 이질적이다.

오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영화 '정이'는 급격한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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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정이' 리뷰
'정이' 스틸 컷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이'라는 타이틀은 SF 영화의 제목 치고 이질적이다. 친숙하고 정감어린 느낌을 주는 이 이름이 23세기에 개발된 AI 제품의 이름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목적에 따라 쓰고 버려지는 AI 인간이 인간성을 획득해 가는 아이러니한 과정을 그린 영화 '정이'에 어울리는 제목이라 볼 수도 있겠다.

오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영화 '정이'는 급격한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용병 AI 정이를 개발 중인 윤서현 박사(故 강수연 분)다. 35년 전 결정적인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후 뇌복제 시술을 통해 AI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용병 윤정이(김현주 분)는 아드리안 내전의 영웅이며, 윤서현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미래의 인류는 뇌복제를 통해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데, 재산의 규모에 따라 다른 방식의 뇌복제가 가능하다. 개인의 존엄성이나 고유성을 지킬 수 있는 A타입부터, A타입보다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를 보장해주는 B타입이 있는가 하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이뤄지는 C타입이 있다. C타입의 경우 뇌복제 이후 탄생할 AI 인간의 각종 상업적 활용에 동의해야만 시술이 가능하다.

가난한 용병이었던 윤정이와 가족들에는 A타입이나 B타입의 뇌복제 시술을 받을 만한 돈이 없었다. 결국 C타입을 통해 부활한 윤정이는 첨단무기 회사인 크로노이드에서 전투 용병 AI로 개발된다. 크로노이드의 팀장인 서현은 매번 새롭게 탄생한 어머니 정이의 AI를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한다. 실험의 핵심은 마지막 전투에서 정이가 실패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크로노이드 연구소는 완벽한 전투 용병 AI 정이를 완성하는 것이 아드리안 내전을 종식시킬 유일한 키(key)라고 여기고 실험을 거듭한다. 하지만 위대한 영웅이었던 정이가 왜 결정적인 순간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죽음을 당할 당시의 기억과 외양을 유지하고 있는 AI 인간 정이와 중년에 들어선 딸 서현이 교차하는 미래 세계에 대한 묘사는 흥미롭다. 기존 SF 영화 속 설정을 차용한 부분들도 적지 않지만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소외현상을 짚어내는 날카로운 시선과 삐걱거리고 기괴한 캐릭터들이 흥미롭다. 수십개 이상 만들어졌던 실험용 AI인간에 불과했던 정이가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깨어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런 그를-외양으로는 엄마처럼 보이는-딸이 돕게 되는 아이러니한 설정 역시 재밌다. 주인공으로 영화에서 흔히 보기 어려웠던 배우들인 김현주와 강수연을 캐스팅한 점은 신선하다.

하지만 정이-서현 모녀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다소 서툴고 충분하지 않은 느낌을 줘 아쉽다. 결국 이야기가 흘러가게 만드는 가장 큰 핵심 동력이 '모성애'인 점도 식상하다. 어느 정도 보편적인 주제를 담지 않을 수 없겠으나, 아픈 딸을 부양하기 위한 엄마의 선택이라든가 전투 상황에서 엄마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어떤 물건의 실체 같은 것들이 평범하고 약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더불어 AI 정이-서현의 관계는 정이의 각성과 탈출 과정에서 재정립 됐어야 하는데, 영화의 후반부는 이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채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흥미로운 지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러닝타임 98분.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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