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와미래] 인구에 관한 논쟁과 전문가 역할

2023. 1. 1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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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문제 복잡한 이해관계 얽혀
소위 권위자들 전문적 지식 없이
통념·주관적 주장 반복 논란 낳아
합리적 담론으로 정책 이끌어야

우리 사회에서 ‘출산’ 대신 ‘출생’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믿음이 꽤 퍼져 있다. ‘출산’은 저출산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며 여성을 도구화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다른 PC(정치적 올바름)주의 용어들과 달리 그 근거는 ‘어감’ 정도에 그친다. 사실 아이는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문화·가치 등 여러 요인 속에서 주체적으로 선택되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이라는 용어가 일·가정 양립이나 주거 지원 등 사회와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기에 훨씬 더 적절하고, 아이를 배고 낳는 것에 대한 선택 권리와 이를 보호하는 사회적 책임성의 맥락에도 더 부합한다. 지난 정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백서에서도 두 용어에 가치적 차이를 두지 않았다.

출산이냐 출생이냐는 논란의 시작은 2016년 행정안전부의 ‘출산지도’ 논란이었다. 전국 시군구별 가임기(15~49세) 여성의 수를 지도로 나타냈는데, 사실 지도에는 지역별 출산율과 출생아 수도 같이 있었다. 쉽게 말해 세계가 다 쓰는 합계출산율 산출식의 비율(rate)과 그것의 분자와 분모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유독 분모에 대해서만 ‘여성을 도구화했다’며 분노가 집중됐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별 출산지원과 양육시설의 차이를 보여주며 지자체의 정책 참여를 유도하겠다던 당초 의도는 무시되고 말았다. 이러한 시도에는 많은 한계와 의문이 있지만, 찬찬히 논의되고 토론될 만한 사안이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
출산지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 중에는 출산율의 분모가 남녀 전체 인구 또는 기혼여성이어야 한다거나, 가임기 표현을 ‘자궁 건강’이나 배란일로 오해하는 경우까지 있다. 일부에서는 있지도 않은 ‘가임기 임신지도’라고 부르며 대중을 자극하려 한다. 이런 오해나 왜곡이 초저출산인 우리 사회, 특히 청년들의 인식과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면 그건 매우 불행한 일일 것이다.

인구에 관한 숨겨진 논쟁거리도 많이 있다. 연금개혁과 정년연장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데, 그 논의를 들여다보면 세대 간 불공정이 읽힌다.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정부, 사업주, 노동계 그리고 전문가의 대표자들은 대부분 50~60대들로 채워진다. 논의가 특정 세대의 시각에 머물거나 또는 이들 세대의 노후를 위한 개혁으로 흐르지 않도록 청년 세대의 목소리도 담아낼 방안들이 먼저 고민되지는 않는다.

주택가격이 폭등하던 재작년에 열린 한 청년주거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의 당황스러운 제안을 본 적이 있다. 40~50대부터는 자가 비율이 높아지니, 지금 청년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며, 그래서 청년에게 주택구입 대출을 확대하라는 것인데, 주택업계의 주장이 그대로 옮겨진 것이다. 그 위험한 시기에 청년 ‘영끌’을 독려한 것인데, 해당 지자체에서는 왜 그런 전문가를 불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언론이나 유튜브에서는 학부 수업만 들었어도 알 수 있는 합계출산율이나 기대수명 같은 기본 인구지표마저 잘못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종종 출연한다. 그런데도 이분들은 ‘최고 인구정책 전문가’ ‘인구학 권위자’로 소개된다. 하지만 전문적 지식이 없으니 ‘나라가 인구 위기’라는 수치만 보여주다가, 다른 연구자의 연구 성과를 자기 것인 양 이야기하고, 대중적 통념이나 주관적 짐작 수준의 주장들을 반복한다. 이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인구에 대한 이해와 논의를 그저 만담 수준에 머물게 한다는 점이다.

인구는 매우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문제이다. 그 속에는 복잡한 이해관계, 규범과 가치, 정치경제적 갈등 관계가 숨어 있기도 하다. 앞으로 인구변동의 영향이 점점 더 구체화할수록 이러한 갈등적 요소들도 더 선명해질 것이다. 그래서 언론과 지자체 및 정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들과 논쟁들을 제대로 선별할 수 있는 역량과 책임성의 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고 나서야 합리적 담론 구성과 사회적 합의 과정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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