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고육책, 우크라전 총사령관 3개월 만에 또 바꿨다
수로비킨은 부사령관으로 강등…권력 엘리트층 알력 분석도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가 3개월 만에 또다시 총사령관을 교체했다. 전선의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황을 역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타스통신 등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러 국방부는 1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사진)을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에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성명에서 “‘특별군사작전’ 책임자의 계급을 높인 것은 러시아군 각 부대 사이의 긴밀한 접촉과 관리 효율성 향상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게라시모프는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1개월 사이에 세 번째로 임명된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이다.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세르게이 수로비킨은 총사령관을 보좌하는 부사령관으로 강등됐다. 2012년부터 총참모장을 지내고 있는 게라시모프 신임 총사령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설계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침공 당시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특별군사작전’으로 명명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담하는 총사령관이 없었다. 그러나 침공 초기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단숨에 장악한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직을 신설하고 남부군구 사령관이던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육군 대장을 첫 번째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드보르니코프는 2015년 시리아 주둔 러시아군 사령관으로 임명돼 ‘초토화’ 작전으로 시리아 내전의 향방을 바꾼 인물이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총공세로 러시아군이 수세에 몰리자 두 달 뒤 총사령관을 수로비킨으로 교체했다. 수로비킨 역시 시리아 내전 당시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재래식 폭탄 공격을 퍼붓는 작전을 지시한 것으로 악명 높은 인물이다. 그는 드론과 미사일을 이용한 무차별 공습으로 우크라이나의 전력과 수도 등 기반시설을 파괴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러시아가 수로비킨을 3개월 만에 전격 교체하고 우크라이나전 최고사령관의 직급을 높인 것은 최근 전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영국 국방부는 “(수로비킨 교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략적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한 러시아 군사 전문 블로거는 “부분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전체는 달라진 게 없다”면서 근본적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이 능력보다는 충성심에 기반한 인사를 했다는 평가도 있다. 다라 마시콧 워싱턴 랜드 연구소 선임 정책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유능한 사람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무능하지만 오랫동안 충성을 유지해온 사람을 임명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권력 엘리트층 내부의 알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군사 전문가 롭 리는 트위터를 통해 “지나치게 힘이 커진 수로비킨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거치지 않고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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