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동맹국의 중국 디커플링 원치 않아…한·중 협력 바람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갈등 격화는 2022년 세계질서를 규정한 핵심 축이었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속에 한반도 정세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새해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달 말 만난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조지타운대 월시 외교대학원 교수)은 2023년에도 미·중 갈등의 파고가 높아질 것이며 타협점 모색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목표가 중국과의 경제적 디커플링은 아니다”라며 “한국 등 동맹국은 중국과의 관계 안정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 30년간 몸담으며 중국과 북한 문제를 다룬 그는 특히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이끌어낼 것도 제언했다.
- 새해 미·중관계를 전망한다면.
“양국 간 경쟁을 한층 격화시킬 요인들이 적지 않다. 공화당이 설치한 하원 내 ‘중국 특위’ 차원의 조사 내용이나 권고 등이 중국을 자극할 것이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공화당 의원들, 대선 후보들이 대만을 방문할지 여부, 2024년 총통 선거를 치르는 대만 정치권 내 논의도 변수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제재도 늘어날 것이다.”
- 중국 견제가 미국에서 초당적 과업이 된 배경은.
“중국의 무리한 전략적 확장(strategic overreach)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덩샤오핑 시대의 ‘도광양회’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이나 당사국과의 합의 거부, 동중국해 갈등, 전랑외교 등 공세적 행태가 특징이다. 강력해진 중국은 스스로의 힘을 과대평가했고,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입장에선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강대국이 ‘규칙기반 질서’를 바꾸려 하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은 이 질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바이든 정부 ‘중 고립’ 바라지 않아
규칙 기반 속 질서에 묶어두려 해
IRA에 보호주의 포함한 건 유감
- 미·중 갈등 격화로 한국처럼 곤란한 위치에 처한 나라들도 있다.
“미국은 동맹들에 중국과 디커플링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미국도 중국과 경제적으로 디커플링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규칙기반 질서에 속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동맹들은 중국과의 관계 안정화를 추구해야 한다. 호주 외교장관이 방중한 것처럼, 한국도 중국과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다만 중국이 한국 등을 상대로 경제적 강압을 사용한 만큼 필요시 중국에 맞서서 할 말은 해야 한다.”
- 미·중 간 ‘책임 있는 경쟁 관리’ 방안이 있을까.
“가장 필요한 것은 양국 간의 심도 있는 대화다. 특히 군사 분야에서 분쟁 관리에 초점을 둔 대화가 시급하다. 핵무기 현대화를 추진하는 중국의 핵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팬데믹, 기후변화, 특히 북한 문제에 관해선 중국과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공통분모를 찾을 수도 있다. 올해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방미한다면 대화 기회가 마련될 것이다.”
와일더 전 보좌관은 올해 초 중국을 방문하기로 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북한 문제를 우선적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이 대북 문제 해결에 협조하도록 충분히 압박을 가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중국이 제공하는 지원 없이는 북한이 오늘날 존재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중국에 이 상황을 방관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국에 북한 문제 해결에 관여할 의지나 역량이 있다고 보나.
“NSC 근무 시절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6자회담에 복귀시키고, 북한이 보다 실용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봤다. 북·중 교역 규모를 고려해도 중국의 영향력은 크다. 다만 과연 중국이 이런 역량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중국은 러시아, 북한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권위주의적 체제의 일부가 됐다. 특히 미국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국은 장기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의 핵실험 시 미국과 그 동맹은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고, 지역 전체의 군사화가 가속화할 것이다. 역내 군비경쟁 고조나 미군 전력 증강 배치는 결코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을 대화에 복귀시키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 이익이 된다고 설득해야 한다.”
- 탄도미사일 60여발 발사, 핵실험 준비, 핵무력정책 채택 등 북한의 공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북한 때문에라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격퇴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해에 북한이 도발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의 공격적 태도가 오판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특히 전술핵이 심각한 위협이다. 푸틴의 행동을 보고 전술핵 사용 위협이 유용한 전략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면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중국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해야 한다.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중국의 미온적 태도를 바꾸는 방도가 될 것이다. 또한 한·미 간에 핵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
북 확장억제에 중국 변수가 중요
핵무장 선택지까지 가지 않도록
한·중 대화 지속하며 할 말은 해야
군축 관점 북핵 접근법은 위험
- 확장억제 강화 논의에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부터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이 독일과 맺고 있는 핵공유 등 한 번도 고려되지 않았던 방안들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역시 중국 변수가 중요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 일본 등에 (핵무장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이야기해야 한다. 미국은 핵확산을 원치 않지만 앞으로 고려하도록 강요받을 수도 있다.”
- 북한과 비핵화 협상의 틀이 아닌 군축의 관점에서 접근하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주장은 워싱턴에서 공감을 얻지는 못한다.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소수의 주장이다. 북한이라는 ‘불가능한 국가’에 대해 구사할 수 있는 좋은 외교적 옵션이 많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길로 가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은 김정은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유화책(appeasement)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70주년을 맞는 한·미 동맹을 평가한다면.
“역대 가장 좋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 최저점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미군 철수까지 시사했다. 바이든 정부는 한·미, 한·미·일 협력을 다시 강화했다. 특히 북한 미사일 발사에 관해 실시간 정보 공유를 시작한 것은 북핵 위협에 대한 종합적 방어체계 구축의 시작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보호주의 조항이 포함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 IRA 같은 보호무역 흐름이 계속될까.
“지금 의회와 행정부는 미국 경제와 미국 일자리 보호를 내세우면서 득을 보고 있다. 하지만 문을 닫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는 군사적 동맹 구축에선 성과를 냈지만 무역정책 분야에선 그다지 진전이 없다. 미국 산업 보호만이 아닌, 동맹들에 혜택을 주는 무역 규칙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간 시진핑
시위 등 ‘사회적 불확실성’ 키워
- 시진핑 3기의 중국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시진핑은 어쩌면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갔다. 세계에 통합되는 것을 바랐던 이전 중국 지도자들과 다르다. 앞을 내다보기보단 뒤를 돌아보는 지도자다. 한때 중국 내에서 붐이었던 비정부기구(NGO)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민간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시진핑 체제는 향후 10년간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겪을 것이다. 높은 청년 실업률, 경제성장 둔화, 팬데믹에 대한 대응은 시진핑 지도부에 대한 중국인들의 신뢰를 흔들어놓았다. 시위를 포함해 사회적인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다.”
- 긴장이 고조되는 대만 문제 해법은.
“대만은 미·중관계 정상화 때부터 복잡한 문제였고, 당장 해결이 어려워서 옆으로 치워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대만을 겨냥한 군사 역량 개발에 나서면서 미국은 중국이 대만에서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게 됐다. 미국이 취할 전략은 안심(assurance)과 억지(deterrence)다. 중국에 약속한 ‘하나의 중국’ 합의를 준수하는 동시에 중국이 대만에 군사행동을 할 경우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 대만 유사시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대만 유사시 어떤 식으로든 미국과 동맹국이 개입할 것이다. 개입의 형태는 그 시점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한국인들은 북한이 대만 위기를 활용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을 두려워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정부의 최우선 순위는 북한의 공격에 대한 방어다. 다만 미국은 대만 유사시 한국 등 동맹들의 적절한 역할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글·사진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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