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무지개

오창민 기자 2023. 1.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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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늘에 무지개가 뜬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선생님이 한 친구의 그림을 보더니 “과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구의 그림은 일종의 풍경화였다. 풀밭이 펼쳐져 있고, 산이 있고, 산 뒤로 해와 무지개가 있었다. 그날 선생님은 우리들을 수돗가로 모아놓고 큰 대야에 물을 떨어뜨리면서 인공 무지개를 만들었다. 선생님은 “무지개는 햇빛이 물방울에 반사·굴절된 것이다. 무지개는 해를 등져야 보인다. 그래서 아침 무지개는 서쪽에 뜨고, 저녁 무지개는 동쪽에 뜨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지개와 해를 나란히 그린 친구는 얼굴이 붉어졌다. 선생님 덕분에 무지개의 섭리를 터득했지만 우리들의 동심은 파괴됐다. 무지개는 실체가 없는 광학 현상이므로 무지개를 향해 달려가도 잡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선생님은 대신 “우리가 세차게 비를 맞고 있을 때 누군가는 우리 머리 위에 걸린 무지개를 볼지 모른다”고 말했다.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 폭풍우가 그친 뒤 일순간 하늘에 나타난 무지개는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징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 그림엔 풀밭에 토끼가 뛰어놀고 무지개가 있다. 요즘은 반려동물의 죽음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표현한다.

인류가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배출하면 2100년쯤 한반도는 무지개 뜨는 날이 지금보다 20~40일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뉴욕대와 하와이대 연구진이 지역별 무지개 증감을 예측한 결과다. 무지개가 생기려면 날씨 변덕이 심해야 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다가 쨍하고 햇볕이 나는 날 무지개를 볼 수 있다. 한국의 기후가 하와이나 동남아시아처럼 변한다는 얘기다. 연구진에 따르면 알래스카 같은 곳도 무지개 뜨는 날이 지금보다 70%가량 증가하고, 지구 전체적으로는 4.3~5.3일 늘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평균기온은 10년마다 0.3도씩 올라가고 있다. 지난여름 수도권엔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고 초강력 태풍이 남부지방을 강타했다. 봄꽃 개화 시기도 계속 당겨지고 있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이제는 무지개를 봐도 아름다움이나 경외보다는 불안과 공포가 생길 것 같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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