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기타신공-제프벡1] 아! 제프 벡(1944~2023)…
나이 들어도 매너리즘 없는 ‘영원한 현역’
블루스, 포크, 재즈, 록, 로커빌리, 일렉트로닉, 댄스, 클래식까지
숱한 스타일 전방위적 모색/실험
간결 명료한 솔로 애들립 기타의 텍스트
‘펜더(Fender)’ 기타의 아이콘
타계 전까지도 왕성한 공연‧레코딩 활동
타협 모르는 고집불통, ‘절친’ 중의 ‘절친’은 지미 페이지
기타 제작은 물론 카매니아/메카닉 전문가로 차량 수십 대도 제작
일렉기타 사상 진정 유일 ‘완벽’한 아티스트
1800만 달러(한화 약 224억) 자산 남겨
세계의 음악인 들 추모 글 쇄도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제프 벡(Jeff Beck)은 일렉트릭 기타 사상 가장 독특한 체험이자 온갖 스토리텔링으로 가득찬 연주/접근 콘텐츠(방법론)의 보고다.
그는 기타를 단순히 '연주'한다기보단 애무하고 할퀴고 꼬집다가도 따뜻하게 포옹하는 등 기타를 '악기'가 아닌 '유기체(생물)'로 접근하려 했다. 가장 난폭하고 원시적 육감적이다가도 섬세하고 훈훈한 미풍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제프 벡의 기타 언어는 '표현력 풍부한 기타'의 전형이다.
제프 벡이 지난 10일 영국 남부 리버홀 저택 인근 병원에서 향년 78세로 타계했다. 사인은 세균성 수막염이다.
제프벡은 주로 피크를 사용하지 않고 오른손의 여러 부위로 줄/네크와의 마찰을 시도하며 놀랍도록 정교한 소리를 연출했다. 블루스, 컨트리, 로커빌리, 재즈, 록, 포크, 일렉트로닉, 클래식 등등 수많은 스타일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응용해가며 자신의 연주/음악세계를 무한 범위로 넓혀 갔다.
새로운 스타일을 탐구하려는 끊임없는 열망은 밴드에서 솔로를 지향하며 발표한 'Blow By Blow'에서 잘 나타나 있다. 본격 기타 인스트루멘틀 앨범이지만, 솔로 애들립이 길게 진행되는 여타 음악인의 앨범과는 달리 솔로라기 보단 거의 멜로디를 연주하듯 전반적인 기타 연주가 간결 명료하다. 애들립도 연주하지만 애들립이라기보다 테마 멜로디를 튕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전반적인 연주 풍이 노래하듯 자연스럽고 짜임새가 탁월하다. 그 시대의 퓨전 운동의 본질적인 공식을 재구성한 걸작 사운드의 출현인 것이다.비틀즈‧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앨범 작업을 한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함께 하며 제프 벡은 그의 역량에 감탄해 "(이 앨범에) 거대한 날개 한쌍을 제공한 인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Blow By Blow'에 이어 'Wired', 'There & Back' 같은 탁월한 명반을 연속 발매하며 제프 벡은 현역 뮤지션 사이에서 '기타리스트의 기타리스트'란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움에 대한 갈증으로 고무된 제프 벡에겐 결코 재즈/퓨전 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다.
대중적인 댄스 사운드를 지향하는 파격적 변신의 85년 'Flash'를 필두로 93년 'Crazy Legs'에선 로커빌리의 뿌리로 돌아왔고, 99년 'Who Else!'에선 일렉트로닉을, 2010년 'Emotion & Commotion'에선 고전 'Over the Rainbow'와 푸치니 'Nessun Dorma' 등을 포함하며 정교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편곡을 시도했다.
솔로 앨범 활동 뿐 아니라 90년대부터 로저 워터스, 존 본 조비, 케이트 부시, 티나 터너 등 여러 스타들의 솔로앨범에 참여하며 왕성한 기타 세션을 하기도 했다.
가장 신경질적일 수 있는, 또한 그만큼 예민하고 개인주의적 개성이 강한 펜더 스트라토와 텔레캐스터를 이만큼 다양한 표정으로 완성한 기타리스트는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제프 벡을 가리켜 가장 위대한 '펜더 기타의 아이콘'으로 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프 벡은 어릴 때 깁슨 레스폴 기타 소리를 듣고 일렉기타에 매료됐지만 그가 평생 가장 많이 연주한 기타는 펜더였다. 그는 기타 소리뿐만 아니라 기타의 메카닉에도 매료돼 직접 기타를 제작하기도 했다. 제프 벡이 2016년 발간한 'Beck 01: Hot Rods and Rock & Roll'란 자전적 에세이집을 보면 그는 13세 때부터 직접 기타 2~3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물을 뜯어보고 조립/제작하는 그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예다.
제프벡의 이 모든 취향/특장점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게 일렉기타 인스트루멘틀사에 길이 빛날 명작 'Guitar Shop'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제프 벡이 기타를 꼬집고 할퀴며 애무하고 사랑하며 때론 증오로 얼룩진 난폭한 에너지로 돌변하기도 한다. 언젠가 그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는 내겐 또 다른 팔이며, 영감의 도구"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프 벡은 'Guitar Shop'을 통해 자신의 영감이자 또한 기타 앞에서 창작과 방법론으로 고민하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물을 보면 참질 못하는 제프 벡의 남다른 분해/조립 열정은 자동차에서도 잘 나타난다. 뮤지션들 상당수가 카매니아이듯 제프 벡 또한 남다른 자동차 애호가다.
제프 벡은 유명해지기 전 소위 '가난한 뮤지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야드버즈에 가입하기 전까지 자동차의 차체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이 그에겐 자동차 전문가로 눈을 뜨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의 삼촌도 카매니아였다.
제프 벡은, 전설적인 MG T-타입 3세대로 미국에서 스포츠카 열풍을 일으킨 47년 MG TC를 비롯해 포드 머스탱 셸비, 63년 콜벳 스팅레이, 슈퍼카를 능가한단 찬사를 한 몸에 받던 2007년 콜벳 Z06, 80년대 최고의 스포츠카 중 하나로 평가받는 911 포르쉐 80년대 모델에서 각종 포드 트럭에 이르기까지 수십여 대가 넘는 자동차 컬렉션을 자랑한다. 제프 벡은 타계 전까지 30대가 넘는 자동차를 직접 제작했으며, 자동차 회사에 의뢰해 또 다른 형태의 커스터마이징 픽업/트럭을 14대나 제작하기도 했다. 단지 드라이버로서만이 아니라 메카닉에 대해서도 수준급이었던 것이다.
주로 고가의 스포츠카를 선호하는 유명 뮤지션들에 비해 제프 벡의 취향은 독특했다. 포드 계열의 전형적인 아메리칸 픽업 타입을 좋아한 것이다. 그의 오랜 친구인 에릭 클랩튼이 자랑삼아 희귀한 페라리 컬렉션을 보여주었을 때에도 제프 벡은 웃으며 "친구야! 이런 건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거지. 나만 만들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차가 진짜 희귀한 거 아니야?"라고 말한 건 유명한 일화다.
1969년부터 채식주의자를 표방한 제프 벡은 이후 수익이 생길 때마다 관련 단체를 후원해 왔고 2005년 산드라 캐시와 결혼했다. 타계 전까지 제프 벡은 서섹스 동부 'Wadhurst'에 있는 리버홀의 저택(사진 참조)에서 살았다.
최고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제프 벡은 대중적 인기완 거리가 있었다. 1976년 'Wired'를 포함해 그의 앨범 중 단 두 장만이 미국에서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이에 대해 제프 벡은 한 인터뷰에서 "주류 팝/록/헤비메틀 또는 그와 유사한 트렌드를 시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제프 벡은 진정한 '기타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활발한 공연 활동 등 제반 영역에서 쉼없이 존재감을 드러내 1800만 달러(한화 약 224억)의 자산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60년이 넘는 활동 기간 8개의 골드 앨범을 획득했고, 8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중 7개는 베스트 록 인스트루멘틀 부문, 1개는 보컬과의 베스트 팝 콜라보 부문이다. 1992년 야드버즈 멤버로, 그리고 2009년 솔로 스타로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두 번 헌액됐다.
타계 전까지도 제프 벡은 투어 활동과 레코딩을 했는데, 2022년엔 배우 겸 기타리스트 조니 뎁과 '18'이란 콜라보 앨범을 냈고, 오지 오스본의 새 앨범 'Patient Number 9'에서도 기타 세션을 한 바 있다.
변덕스럽고 타협을 모르는 고집불통 성격의 제프 벡은 대인관계 폭도 좁은 편이었다. 절친 중의 절친이라면 무명 시절부터 함께한 지미 페이지 정도다.
지미 페이지는 2018년 제프 벡 다큐멘터리 'Still on the Run: The Jeff Beck Story'에서 "모든 사람이 제프 벡을 존경한다"며 "그는 특별한 음악가로, 연주할 땐 (언제나)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지미 페이지는 SNS를 통해 제프 벡 비보를 듣자마자 "그의 연주는 독특하고 상상력은 무한합니다. 수백만 명의 팬과 함께 당신을 그리워하며, 편히 쉬세요"라고 썼다.
제프 벡 사후 세계의 많은 언론이 그를 다루고 있는데, 뉴욕타임즈는 "록 역사의 한 장(챕터)이었던 기타리스트가 사라졌다"고 제프 벡을 추모했다.
데이빗 길모어는 SNS에서 "그의 음악은 수년 동안 나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격과 영감을 줬다"고 했고, 토니 아이오미는 "그가 세상을 떠나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며 "제프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상징적이며 천재적인 기타 연주자였다"고 했다. 또한 토니 아이오미는 "결코 다른 제프 벡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드 스튜어트는 "라이브로 연주할 때 실제로 내 노래를 듣고 반응하는 몇 안 되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인 제프, 당신은 최고였다"고 했다.
스티브 바이는 "나는 제프벡이 어떻게 하나의 음을 치고 다른 사람이 만질 수 없는 그 하나의 음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며 "제프 벡은 항상 예술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기술을 계속 확장해 왔다"고 했다.
존 메이어는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를 만나고 싶다면 제프의 콘서트에서 청중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모두가 경외심으로 지켜보고 아이들처럼 웃을 것"이라며 "그는 정말로 눈부셨고 ️ 끊임없는 영감을 준 제프 벡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함께 했거나 알던 뮤지션/기타리스트 비보에 대부분 침묵을 해오던 에릭 클랩튼도 이번엔 자신의 트위터에 "항상 그리고 영원히(Always and ever)"라고 짧게 제프 벡을 추모했다.
이외에 "일렉트릭 기타를 터치한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인물"(조 보나마사),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하나"(나일 로저스), "그의 죽음으로 우린 세계 최고의 기타 연주자 중 한 명을 잃었다"(믹 재거), "핫로드와 로커빌리 음악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했으며, 제프는 무대를 걷는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브라이언 세처), "가장 위대한 뮤지션 중 하나…RIP"(케니 웨인 셰퍼드), "많은 영감을 준 제프 벡은 내 최고의 기타 영웅. 당신의 음악과 정신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자레드 제임스 니콜스) 등 세계의 많은 뮤직션들의 추모 글이 이어지고 있다.
작곡가/음악감독 윤일상은 기자에게 "오늘 아침 비보를 접하고 너무 허망/황망해 갈피를 못잡았다"며 "나이가 들며 활동을 쉬거나 퇴보하는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제프 벡은 새로움에 대한 추구를 끊임없이 한 진정한 현역"이라고 평했다. 또한 윤일상은 "셀 수 없이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준 제프 벡의 위대한 유산이 사후에도 계속 돼 음악적 자양분으로서 계속 되며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 자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십수 년 전 제프벡 'Blow by Blow' 공연을 했던 기타리스트 박주원은 기자에게 "평소 아침 9~10시 쯤 기상하는데, 오늘은 7시 쯤 일찍 일어나 이 비보를 접해 그 충격은 더했다"고 말했다. 박주원은 "제프 벡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언제나 자신을 항상 뛰어 넘으려는 노력과 실험을 끊임없이 한 기타리스트"라며 "다음 연주회 때 제프 벡의 'Peolple get Ready'를 인스트루멘틀로 커버하며 추모하고 싶다"고 했다.
기타리스트 찰리정(호원대 교수)은 "오늘 비보를 접하고 도저히 믿질 못할 만큼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고 했다. 찰리 정은 "제프는 나이를 먹어도 연주력이나 에너지가 노쇠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농익은 연주를 들려준 점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평했다. 또한 찰리정은 "어떤 음악가도 결코 완벽할 순 없지만 제프 벡 만큼은 유일하게 완벽했다"고 했다. 찰리정은 "음악을 하다보면 극히 미세한 부분에서도 미스터치나 피치/음정의 불안이 나올 수 있는데 제프 벡은 그러한 게 전혀 없는 진정 완벽한 연주를 했고, 'Blow by blow'부터 'The weird' 등 일련의 솔로작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오차없는 최고 수준을 들려줘, 개인적으론 또 다른 영감을 받기 위해 요근래 가장 열심히 듣고 있던 기타리스트였다"고 덧붙였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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