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난민이 된 고려인…우리는 그들의 삶을 잊었다

한겨레 2023. 1. 12. 19: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읽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피란길에 오른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이 지난해 3월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마중 나온 가족들과 포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김올렉씨는 13만6천평(약 45만㎡)에 걸친 우크라이나 대평원을 일궈왔다. 유럽 일부 지역 밀 공급을 책임진 농부이자 경영인이었다. 러시아의 폭격이 시작되고 그의 집과 회사, 창고는 모조리 파괴됐다. 두달 뒤, 그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고려인문화센터 앞에서 줄 서야 했다. 3㎏짜리 밀가루 한포대를 받는 배급줄이다. 전쟁은 그러하다.

2022년 3월18일부터 광주, 청주, 인천, 안산, 경주, 안성으로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들이 들어왔다. 300일에 걸쳐 3천명 남짓 도착했다. 대부분 여성과 아동이며 징집 대상에서 벗어난 60살 이상 남성이 섞여 있을 뿐이다. 러시아의 공습이 집중됐던 오데사, 헤르손, 돈바스 지역에 살던 이들이다. 하루에도 여러번 방공호로 뛰어들어야 했고, 지하 대피소에서 여러 날을 지새우다 몰도바 국경을 걸어서 넘어왔다. 고려인이라 해도 한국은 쉽사리 허락되는 피난처가 아니었다. 먼저 들어와 있던 가족이나 친척이 애태우며 탄원한 결과 사증 발급이 완화되면서 입국할 수 있었다.

이잔나씨는 유치원생 둘째와 초등학생 첫째를 데리고 한국에 왔다. 정보기술(IT) 엔지니어였던 남편은 전쟁에 차출됐고, 남아 있기로 결정한 부모를 뒤로하고 떠나왔다. 전쟁 전에는 주말이면 요트를 타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영어 선생님이었다. 한국에서는 화장품 용기 제조 공장, 전자부품 조립 공장을 전전했다. 생활비가 부족해 작은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고, 큰아이가 학교를 포기하고 동생을 돌봤다. 걸음마를 뗀 아이를 그나마 안전한 공간에 두고자 부녀자 쉼터로 들어간 라리사씨도 월세를 마련하느라 공장을 전전한다.

대부분 한부모 가정인 고려인 피난민들은 정신적으로도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 지난여름 안산 고려인문화센터 상담사들은 피난민 청소년들을 상담했다. 스트레스 수치가 최고조였다. 18살 고등학생 남자아이는 엉엉 울었다고 한다. 180㎝가 넘는 몸 안에 꾹꾹 눌러왔던 고통을 토해낸 것이다. 일 나간 어머니 대신 동생들을 돌보며 살림하느라 다섯평 원룸을 맴맴 돌던 아이는 인터넷 수업을 받는다지만 사실상 중단된 학업에 절망하고 있었다. 활동가들도 울었다.

고령인 고려인 2세들은 전쟁터로 돌아가고 있다. 조카의 원룸으로 피신해왔던 올렉씨도 떠났다. 잘 정착해 산다고 여겼던 자식들의 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 짐을 싼다. 절망적인 결심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가 건강보험료다. 체류 기간 6개월이 지나면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월 14만원이 넘는다. 한국 정부는 피난민들에게 일체의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피난민 65만명을 수용한 루마니아는 1인당 월 20만원씩 3개월간 지급하고 의료와 교육 서비스를 지원하며 민간시설을 개방해 살게 한다.

사단법인 너머는 고려인 피난민들에게 월세 보증금을 지원했다. 안산은 보증금 100만원이면 방을 얻을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해외재난 긴급 지원금 일부를 끌어왔다. 이불, 생리대, 기저귀 등을 함께 받으며 고려인 피난민들은 ‘고국에 왔다는 실감을 합니다. 한국 정부, 고맙습니다’라고 머리 숙였다. 활동가들은 차마 민간 지원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외교부 간담회부터 일선 공무원들까지 만나 피난민 지원을 호소해온 김영숙 안산 고려인문화센터장은 많은 이들로부터 한결같은 답을 들어왔다. ‘노력해보겠습니다.’

김 센터장의 말이다. “안성시의 경우는 35가구인데도, 왜 시가 품지 못할까요? 정부는 꼭 법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갖춰진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지원 업무에 포함하면 됩니다. 시행령을 동원할 수도 있고 지침이나 행정 사안으로 긴급 지원을 할 수 있어요. 지역 주민으로 포괄해야 합니다.”

활동가들은 3인 가족 기준 월 200만원씩 1년 지원과 건강보험료 지원을 요구한다. 600가구면 1년에 148억원이다. 기초 한국어라도 배워서 일 나가고 아이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필요한 지원이다. 재작년에 교육부는 문화체육관광부·외교부와 해외 한국어 교육 지원 예산 236억원을 확보했다. 의지는 예산을 만든다.

평생의 노력이 파괴되고 고꾸라진 존엄을 달래며 전쟁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있는 고려인들. 그들의 홀로 애쓰는 분투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가 지원책을 도모하길 바란다. 정책은 지도자의 마음에서 나온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