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귀족노조’ 비판 기자님의 속사정
[슬기로운 기자생활]
선담은 | 정치팀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 열댓명 기자들이 복도 바닥에 죽치고 앉아 환노위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의 비공개회의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대기하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없는 기자들 사이에서 한 방송사 90년대생 기자가 말을 꺼냈다. “임이자(의원)는 어떻게 저럴 수 있어? 같은 한국노총 출신인데 이수진(의원)하고 너무 다르잖아!”
이날 회의에서 노동자 단체행동에 무분별한 소송을 막는 노란봉투법을 논의하자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과 30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시간을 ‘주 최대 60시간’으로 만드는 추가연장근로제를 2년 더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의 ‘충돌’을 놓고 하는 말이었다. 옆에 있던 기자들은 동의한다는 듯 큭큭 웃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요즘 기자들로선 ‘노동시간 단축’ 기조에 역행하는 국회의원의 주장도 충격인데, 그 당사자가 노동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배신감을 느끼는 듯했다.
노사관계를 둘러싼 언론 지형은 대개 기업과 정부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동료 기자들은, 소속 매체의 성향과 별개로 ‘친노동’에 가깝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노동권에 관한 한 그렇다는 얘기다. 보수매체나 경제지조차 기사로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상한제를 비판해도, 그곳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자신들의 월급을 동결하겠다거나 업무 부담이 커지는 사내 정책에 찬성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2019년 고용노동부를 출입할 때, 출입기자단 송년회에선 당시 이재갑 장관을 만난 기자들이 “장관님, 저희 회사 포괄임금제인데 근로감독 좀 해주세요”라고 하소연하는 모습도 봤다. 역시 그중에는 경제지 기자들도 있었다. (정권이 바뀐 지난해 행사 때도 이정식 노동부 장관에게 몇몇 기자들이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조선일보> 노조는 2014년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며 “월급에서 자존심이 나온다”는 명언을 남겼다. 진심으로 그 주장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바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회사에선 제 노동권을 지키고자 하는 일부 기자들이 기사에서는 노조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걸 볼 땐,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기업의 광고가 곧 언론사의 매출과 기자들의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노조를 공격하고 경영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는 해당 매체 기자들의 ‘연봉 인상 운동’일까. 그게 아니라면, 노조는 이른바 ‘못 먹고 못사는’ 이들의 전유물이기에 ‘귀족노조’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신념일까.
이런 물음에 한 경제지 기자가 했던 가장 솔직한 답변은 “나는 기사를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지만, 데스크가 고친 걸 어쩌겠나”라는 말이었다. 씁쓸한 답변이었지만,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도 딱히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기자들 역시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안고 산다. 회사 사람들 눈치를 피해 출입처 행사에서 장관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기 회사 근로감독을 호소하는 그와 술잔을 기울이며 속을 달랠 뿐이다. (물론, 기자의 부탁으로 노동부가 언론사 근로감독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보도해주지 않는 언론사들에 분통을 터뜨리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이런 기자들의 속사정이 어이가 없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쌓인 앙금으로 보수매체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하는 활동가들도 여럿 봤다. 언론의 왜곡 보도로 상처받은 노조와 조합원들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다만, 노조 활동가들에게도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보수매체나 경제지 기자라고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취재를 거부하기보다는 한번쯤은 그 기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봤으면 좋겠다. 하루아침에 그 기자들이 노조를 지지하는 기사를 쓰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소통 자체가 단절된 채 ‘뿔 달린 괴물’이라고 오해했던 노조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노조 때리기’에 발맞춘 기사들을 읽다가 마음이 답답해져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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