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증, 삼계탕, 제주 4·3…그 가족들의 연대기

한겨레 2023. 1. 1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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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딸 박채영씨와 60살 엄마 박상옥씨가 함께 밥을 먹는다.

86살 엄마 강정희씨와 39살 일본인 사위 아라이 카오가 삼계탕을 먹는다.

일본 오사카조총련 열혈 활동가였던 엄마는 딸 양영희씨에게 결혼 상대로 일본인은 안 된다더니, 사위가 오자 닭 뱃속에 아오모리 마늘 40쪽을 넣고 5시간을 고았다.

"어머니가 왜 그토록 한국 정부를 부정하는지 몰랐어요. 엄마 원망을 많이 했는데 4·3을 알고 나니 엄마를 탓하지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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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포스터.

[삶의 창] 김소민 | 자유기고가

29살 딸 박채영씨와 60살 엄마 박상옥씨가 함께 밥을 먹는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 방식대로 두부를 굽는다. 엄마는 딸의 말을 15년 동안 듣고 또 들었다. “우리는 접점이 한번도 없었네?” 그걸 알 때까지. 15살 때 딸은 거식증으로 2주 동안 입원했다. 당시 키 163㎝, 몸무게 32㎏이었다. 김보람 감독의 다큐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모녀가 걸어온 평행선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의 성공기이자 실패기다.

엄마와 딸은 냉장고 앞에서 이야기한다. “엄마 마음에 들려고 하면 할수록 난 결핍을 느꼈어.” 그 말에 엄마는 되묻는다. “내가 널 마음에 안 들어했다는 건 사실이고?”

딸의 말은 엄마에게 사실이 아니다. 20대에 맹렬하게 노동운동했던 엄마는 1990년대 이념을 잃었다. 이상이 사라진 자리, 젖먹이 딸과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여자가 서 있었다. “패잔병 같은 느낌… 내 인생이 너무 버거워… 채영이가 중심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30대를 보내고 대안학교 선생이 되면서 엄마는 삶을 향유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때 딸의 섭식장애가 시작됐다. 딸은 오래 외로웠다. “폭식하는 순간만큼은 내 욕망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음식을 고르는 내가 활기차게 느껴졌다.”

엄마의 엄마는 사랑하지 않았을까? 박상옥씨는 엄마를 싫어했다. 딸만 낳아 구박받던 엄마의 엄마는 40년 동안 토했다. 손가락, 젓가락도 모자라 나뭇가지를 꺾어 자기 목구멍에 찔러 넣었다. “엄마가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60대가 된 상옥씨는 생각한다. 그 할머니는 손녀 채영씨에게 고구마를 쪄 줬다. 누군가 “고구마를 예쁘게 쪘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 고구마 양쪽 끝을 일일이 다듬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성가신 일인데 할머니는 여러번 이렇게 고구마를 쪄서 내게 줬다.”

다큐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엄마 상옥씨는 질문을 받았다. “다큐에서 한 말 중에 후회되는 건?” 그는 “내가 널 마음에 안 들어했다는 건 사실이고?”를 꼽았다. “채영이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건데.” 그 옆에 딸이 말했다. “엄마가 날 사랑한 건 사실이고,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 것도 사실이죠.”

86살 엄마 강정희씨와 39살 일본인 사위 아라이 카오가 삼계탕을 먹는다. 일본 오사카조총련 열혈 활동가였던 엄마는 딸 양영희씨에게 결혼 상대로 일본인은 안 된다더니, 사위가 오자 닭 뱃속에 아오모리 마늘 40쪽을 넣고 5시간을 고았다. 사위는 장모에게 삼계탕 요리법을 배운다.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이 26년간 이어온 가족 3부작 중 마지막이다. 양 감독의 부모는 1971년 아들 셋을 북으로 보내고 평생 뒷바라지했다. 양 감독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을 직면하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2018년 강정희씨는 70년 만에 제주 땅을 다시 밟았다. 한국 정부가 제주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조선국적자인 엄마에게 임시여권을 발급했다. 18살에 동생을 들쳐업고 “시체들이 쌓인 길”을 30㎞ 걸어 일본으로 밀항한 정희씨는 별말이 없다. 그 길을 엄마와 다시 걸으며 양 감독은 말한다. “나는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치매와 뇌경색을 앓으면서 병상에 누운 강정희씨에게 4·3의 그날들이 돌아왔다. “학교에 줄을 세워두고 다다다다….” 양 감독은 운다. “어머니가 왜 그토록 한국 정부를 부정하는지 몰랐어요. 엄마 원망을 많이 했는데 4·3을 알고 나니 엄마를 탓하지 못하겠네요.”

한 사람이 통과한 세월, 그 위에 켜켜이 쌓인 세대들의 세월까지 모두 끌어안을 때야 비로소 적절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서로에게 다만 이렇게 바랄 수 있을 뿐이다. 살아만 있어 달라.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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