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안굽는 막내가 못마땅한데...저도 젊꼰인가요?”
직장인 박모(36)씨는 지난달 송년 친구 모임에 참석했다가 난데없는 ‘꼰대’ 논쟁에 휘말렸다. 친구 중 한 명이 회사에서 무선 이어폰을 귀에 끼고 일하는 동료를 비난하자 다른 친구가 “나도 이어폰 끼고 일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업무상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꼰대적 사고”라는 열띤 논쟁 끝에 참석자 7명의 결론은 ‘찬성 4 대 반대 3′으로 갈렸다고 한다. 박씨는 “이어폰을 낀 채 일하는 사람이 회사에 없어서 잘 몰랐는데 서로 생각이 많이 달라서 놀랐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근무 체제가 막을 내리고 대면 근무로의 복귀가 본격화하면서 직장 내 업무 태도를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직장 내 이어폰 착용부터 회식 때 고기 굽기까지 갖가지 주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WEEKLY BIZ가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 등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는 20~40대 직장인 50명에게 이른바 꼰대 논쟁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뜨거운 감자’ 된 이어폰 착용 근무
요즘 꼰대 논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슈는 ‘업무 중 이어폰’이다.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의 ‘MZ오피스’ 코너에서 해당 내용이 다뤄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실제로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WEEKLY BIZ가 직장인 50명에게 물었더니 76%(38명)는 “이어폰을 낀 채 일하는 동료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직장인 상당수는 이러한 모습에 꽤 익숙해져 있었다. 해당 직원에 대한 동료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묻자 73.2%(응답자 41명 중 30명)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상사 또는 주변 동료가 (이어폰을) 빼라고 얘기했다”고 답한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이어폰을) 빼라고 하진 못하고, 적당히 눈치만 주는 상황이 이어졌다” “해당 직원을 비난하는 뒷말이 나왔다”는 응답은 각각 9.8%(4명), 4.9%(2명) 나왔다.
직장인 중에는 이어폰 착용 근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응답자의 70%(35명)가 “일만 잘하면 그만이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 분위기를 해치는 일탈 행동이어서 불쾌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20%(10명)에 불과했다. 대기업 14년 차 직장인 이모(42)씨는 “회의 때 이어폰을 끼는 것도 아니고, 일할 때 업무 능률을 높인다고 쓰는 것인데 나쁘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MZ세대 직장인 중에는 유튜브에서 ‘일할 때 듣기 좋은 음악’ 등을 검색해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김모(31)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업무 몰입도를 높여주는 음악을 듣게 됐다”며 “들으면 잡생각을 덜하게 되고, 피로감도 줄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고기는 누가 뒤집어야 하나
이어폰 착용 외에도 머리카락 볼륨을 살리는 데 쓰는 미용 기기인 ‘앞머리 헤어롤’을 끼고 일하는 것, 점심 식사 때 반주(飯酒)를 하는 것, 사무실에서 슬리퍼를 신는 것, 쌍꺼풀 수술 후 선글라스를 쓰고 출근하는 것 등도 자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사안에 따라 직장인들의 의견은 천차만별이다. IT 업체에 다니는 윤모(33)씨는 “사무실에서 슬리퍼를 신고, 점심 때 맥주 한 잔은 가볍게 할 수 있지만 선글라스를 쓰고 일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영상 관련 스타트업에 다니는 이모(29)씨는 “사내 분위기가 워낙 자유로워서 선글라스는 껴도 될 것 같은데 음주 후 술 냄새 풍기면서 일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논쟁은 사무실 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회식에 마음대로 빠져도 되는지, 회식 자리에서 누가 수저를 꺼내고 물을 따라야 하는지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오간다. 특히 직장인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는 이슈는 ‘고깃집에 갔을 때 누가 고기를 구울 것인가’이다. 한편에서는 “막내가 하는 것이 기본 예의”라고 하고, 반대편에서는 “그렇게 얘기하면 꼰대”라고 맞받아친다.
WEEKLY BIZ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0%(40명)가 “‘막내급’이 고기를 안 굽는 상황을 경험했다”고 했는데, 거의 대부분은 이러한 상황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막내급 직원에게 눈치를 주거나 구우라고 시켰다고 한 사람은 1명뿐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사회 생활이 부족해 보인다” “(막내급이) 눈치껏 해주면 나쁠 게 없다” “내가 구워도 상관없지만 막내급이 집어서 먹기만 하면 얄미울 것 같다” 등 부정적 답변이 다수 나왔다. 10년 차 공무원 김모(39)씨는 “고기 구울 생각조차 안 하는 신입들을 의식하는 걸 보면 나도 ‘젊꼰(젊은 꼰대)’이 된 건가 싶기도 하다”고 했다.
◇새로 쓰는 ‘자유의 적정선’
그렇다면 애초에 꼰대란 무엇일까. 설문조사에 참여한 직장인들은 공통적으로 꼰대를 ‘본인의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업무 외적인 일에 참견하고, 자신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직장 내 예절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꼰대로 모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꼰대 논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생)가 속속 입사하는 데다 재택근무로 서로 떨어져 지내던 직장인들이 사무실로 복귀해 얼굴 마주칠 일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이 논쟁을 소모적인 감정 싸움으로 끝내지 말고 직장 내에서 허용되는 자유의 암묵적인 적정선을 새로 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를 쓴 임홍택 작가는 “Z세대는 기본적으로 업무와 타인에 해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꼰대 논쟁은 세대 간에 ‘생각의 다름’을 확인하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직장 문화를 새로 정립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