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출연연, 집단연구 중심으로 혁신해야
항상 출연연에 대한 평가는 비슷하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해왔지만, 최근에는 그 역할과 비중이 작아졌다는 것이다. 1998년 인력 5300여 명, 예산 8800억원의 출연연 규모는 2021년 1만6700여 명, 5조원으로 성장했다. 지난 20년간 규모 면에서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왜 역할과 비중은 그러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1990년대 중반 도입된 '연구과제 중심운영제도(PBS)(PBS)'와 '대학설립준칙주의'는 국가연구개발 분야에서 대학의 역할과 비중을 크게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수를 중심으로 석박사 과정의 학생연구원으로 구성된 대학 연구실이 빠르게 늘어나며 출연연 연구실의 역할을 대체해갔다. 중소형 연구사업에서 스타 교수들을 앞세운 대학의 성과가 두드러지면서 출연연의 역할과 비중은 자연스레 줄어져 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출연연은 중소형 연구과제보다는 대형연구사업에 집중하는 포지션 전환을 해야했다고 말한다. 중소 규모 연구사업을 대학에 내어준 만큼 출연연은 가지고 있는 집단연구체제를 활용하여 대형연구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문에도 불구하고 중소형 연구실 단위로 구성되는 출연연의 기본구조는 아직도 여전하며, 대규모 집단연구를 하는 출연연은 우주개발을 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핵융합로를 연구하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말고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출연연이 집단연구 체제로 쉽게 전환하지 못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은 목표의 모호함에 있다. 공동의 목표는 집단행위의 핵심적인 요소로써 목표가 구체적이고 명확할수록 집단의 응집력과 추진력은 향상된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미국에서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는 13만명의 참여 인력과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약 2조4860억원)의 예산을 활용하는 초대형 연구사업이었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서 진행된 이 초대형 프로젝트가 성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매우 명확하고 구체적인 단 하나의 목표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출연연에서 이처럼 구체적인 목표를 찾기는 쉽지 않다. PBS 제도에서는 명확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기관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관운영비의 일정 부분을 수탁과제로 충당해야 하는 출연연은 두리뭉실한 목표를 두고 다양한 과제를 많이 수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즉, 자신의 목표와 다소 부합하지 않는 연구과제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자 또한 과제 수주에 유리한 목표를 찾을 수밖에 없다. 수탁 과제의 규모가 늘어날수록 연구기관의 목표는 더욱 두리뭉실해진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연구기관에서 안정적 재정 상황이 우수한 연구성과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탁과제는 정부출연금인 기본사업보다 연구자에게 훨씬 매력적이다. 소속된 연구기관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탁사업을 선호하는 연구자는 언제나 존재하므로 PBS 제도에서는 다른 외력이 없는 한 수탁과제의 규모는 항상 증가한다. 수탁과제가 증가하면 연구기관의 전체사업 규모가 커지고 연구기관은 당연히 더 많은 인력과 인프라를 정부에 요구한다. 인력과 인프라가 늘어나면 더불어 수탁과제는 또 늘어난다.
PBS 도입 이후 출연연의 규모가 불어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PBS 문제는 일시에 정리하지 못하면 끝나지 않는다. 또한 PBS가 존속하는 한 수탁 규모는 계속 늘어나므로 PBS 폐지 비용 또한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출연연이 대학과 차별되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형·집단연구 체제가 필수적이다. 거대한 과학자 집단이 일치된 목표를 가지고 연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이제 달 궤도에 안정적으로 진입한 다누리호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PBS로 인해 각자의 연구과제로 흩어져 버린 연구자들을 다시 모아야 한다. 출연연에는 기술 패권 시대를 주도할 충분한 역량이 있다. 어떠한 목표와 시스템으로 그 역량을 모을지가 숙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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