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삼키는 유족들 "2차가해는 장관, 총리, 국회의원의 말이었다"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이태원 참사 유족과 생존자들이 참사 이후 정부의 대응이 '2차 가해'였다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재차 촉구했다. 참사 직후 경찰 대응으로 인한 혼란, 사망 시점과 응급처치 등과 관련된 정보 미공개 등으로 유족들은 "아직까지도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12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는 참사 유가족 8명, 생존자 2명, 지역상인 1명이 참여해 참사 당시 상황과 참사 이후 정부의 대응을 증언했다. 생존자와 유족이 직접 국정조사에 참여해 공식적으로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참사 당시 상황과 참사 이후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증언하던 도중 울음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의원 말이 2차 가해...유족들 만남도 없었다"
참사 생존자들은 정부 관계자의 '2차 가해'를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참사 당일 사고 현장에 있었던 김초롱 씨는 "저는 강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성댓글이나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저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라면서도 "저에게 2차 가해는 장관, 총리, 국회의원들의 말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참사 후 행안부 장관의 첫 브리핑을 보며 처음으로 무너져내렸다"라며 "저는 이 말을 '놀러 갔다 죽은 사람들이다'라고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참사 직후인 작년 10월 30일 브리핑을 통해 "예전에 비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의 인파는 아니었다", "경찰 병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었다" 등의 말을 한 바 있다.
김 씨는 또한 극단적 선택을 내린 고등학생 참사 생존자를 두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스스로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던 것을 언급하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다. 치료와 상담을 이렇게 열심히 받는 저는 매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생존자 A씨 또한 유족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는 정부의 행위가 "2차 가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A씨는 "참사 현장에서 예비신부를 잃었다"라며 "희생자를 잃었다는 슬픔을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버텨낼 수 있었다. 그만큼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희생자 고 조경철 씨의 동생 조경선 씨 또한 "저에게 있어 제일 큰 2차 가해는 뒤에서는 아무 것도 도와주고 있지 않으면서 앞에서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언론 플레이하는 정부와 공무원, 몇몇 비윤리적인 의원들의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유가족들이 진짜 원하는 부분을 왜곡하고 선동하고 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희생자 고 유채화 씨 유족도 "모든 유가족들이 피해 보상을 원하지 않았다"라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과, 책임은 뒤로 하고 다급히 언론에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정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왜 죽었는지, 어떤 치료 받았는지 아직도 몰라"
유족들은 이태원 참사의 이유와 희생자 사망 시점, 응급처치 및 병원 이송 과정 등에 대해 여전히 아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희생자 고 서형주 씨의 누나 서이현 씨는 "동생이 어떻게 일산동국대병원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소방서에 구급 일지를 요청하였지만 소방서에는 당시 의식이 없었거나 사망한 사람들은 신원 확인이 안 돼서 구급일지가 없다고 했다"라며 검안서에 '10시 15분 이전 추정'이라고 적힌 사망 시점 또한 "정확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부대표는 "제 딸과 희생자들이 구조대원으로부터 제대로 도움을 받았었는지, 받지 못했다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고 싶다. 그런데 국정조사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도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라며 "왜 참사를 막기 위한 대비를 국가가, 지방자치단체가 하지 못했었는지 알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이 직접 희생자 행적을 알기 위해 관련 자료를 정부에 요청해도 정부는 비협조적이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처음부터 국가가 투명하고 성숙하게 대처해 줬다면"… 국정조사 비판도
유족과 생존자들은 참사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제대로 된 조치가 없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가 참사 직후 희생자 확인 절차에서 보인 문제점이나 위패없는 분향소 설치, 국정조사 진행 과정에서 유족 의견은 듣지 않은 채 "책임회피식" 대응에만 급급했다는 지적도 잇따라 나왔다.
희생자 고 박가영 씨 어머니 최선미 씨는 "그동안 정부는 참사나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실종자, 사망자 신원을 신속하게 파악하여 유가족에게 알렸고 사고경위, 사고 이후 조치 등의 내용도 유가족에게 알렸다"라며 "그러나 이번 참사의 경우는 별다른 조치 없이 유가족들이 직접 희생자들을 찾아나서야 확인이 가능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통령이 중대본과 행안부 등에 유가족을 위한 여러 가지 지시를 한 것으로 아는데, 정부 기관 어느 기관도 유가족을 모아놓고 브리핑을 한 사실이 없다"라며 "그 결과 유가족들은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아이들이 어떤 구급조치를 받았는지, 왜 신원 확인이 12시간이나 걸렸는지, 시신 수습 과정이 어땠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라고 울분을 통했다.
유족들은 국정조사 과정 이후도 "의문투성이"라며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통한 진상조사를 지속해나갈 것을 촉구했다.
협의회 이정민 부대표는 국조특위 위원들에게 "정말로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하기는 한 거냐"라며 "참사 이후 컨트롤타워라는 국무총리는 출석조차 안 했다"라고 지적했다.
협의회 이종철 대표 또한 "국정조사를 지켜보며 유가족들은 오히려 실망감과 죄책감을 느꼈다"라며 "허위부실자료를 제출하거나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기관들, 출석조차 하지 않는 국무총리, 허위로 답변하거나 책임회피식 답변을 하는 증인들. 너무나 좌절스러운 순간이었다"라고 질책했다.
유족 측은 유족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의문점만으로도 " 진상규명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라며 "정권이나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립적인 조사기구, 유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사기구가 필수적"이라며 진상조사 지속을 촉구했다.
국회 국정조사에서 참사 유족 및 생존자가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 국정조사는 이번 공청회를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짓고 결과보고서를 채택한다. 국정조사 기간은 17일까지다.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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