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된 디지털 파일 하나 때문에… 美 하늘길 멈춰 섰다 [뉴스 투데이]
“재난 수준… 중대한 개선 필요”
90분 대혼란에 승객들 발 묶여
환불 문제 싸고 논란 이어질 듯
투자 부족 따른 시스템 노후 탓
바이든 “해킹 아냐” 혼란 진화
사고 원인 총체적인 조사 지시
1만개가 넘는 항공편이 지연 또는 취소된 미국의 역대급 항공 지연 사태는 조종사들에게 안전 문제를 경고하기 위한 미국 연방항공청(FAA) 시스템의 손상된 디지털 파일 하나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의 오류가 큰 피해를 부른 사례는 국내에서도 수차례 있었다. 네트워크 기반 초연결 사회의 특징적 사고라는 분석이다.
운항 중단 조치에 따라 항공편의 연쇄적인 지연과 연착, 결항 등이 이어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12일 오후 1시 현재까지 1만편 이상의 항공편이 지연되고, 1300편 이상의 항공이 취소됐다. 미국 항공 중단의 여파로 전 세계에서 항공 지연 편수는 같은 날 2만422건, 취소는 2887건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 하늘길이 마비된 상황이다. 지연 여파는 12일에도 이어졌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미국서 전국적으로 항공편 운항이 중단된 것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9·11 테러 당시 국내 항공기 이착륙이 전면 폐쇄 조치했다가 이틀에서 사흘이 지나 일부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운항을 재개한 바 있다.
갑작스럽게 전국적 항공편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승객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공항은 항공편 지연에 따라 비행 재개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항공 취소로 발길을 돌리는 승객들 역시 끝없이 이어졌다.
시스템 오류 원인이 사이버 공격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미국 전역에서는 긴장감도 돌았다.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의 사이버 공격에 따른 것이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됐다. 다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이 사이버 공격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며 추가 혼란을 막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항공기 운항 중단 사태가 발생한 직후 피트 부티지지 미국 교통장관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사고 원인에 대한 총체적인 조사를 지시했다고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이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미국의 항공 시스템의 붕괴는 결국 투자 부족에 따른 시스템 노후와 시스템 현대화 지연이 원인으로 좁혀지고 있다.
FAA는 이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노탐 중단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계속 철저히 검토하고 있다”며 “초기 작업에서 이 중단을 추적하니 문제는 손상된 데이터베이스 파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디지털 파일 하나에 오류가 생기면서 메인 시스템과 백업 시스템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제프 프리먼 미국여행협회 회장은 성명에서 이번 사태를 ‘재난’이라고 평가하고 “미국 교통망에 중대한 개선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정부와 산업계가 이미 오래전부터 시스템 노후화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WSJ는 “항공 산업 전문가들은 유연한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하는 시스템이 서로 다른 실시간 데이터 소스를 보다 완벽하게 연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서 “이러한 시스템은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속 속도를 높이고 조종사나 승무원과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를 자동화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위해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전통적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 상원 상업과학교통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소속 마리아 캔트웰 상원의원은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중단을 야기한 원인과 향후 이 같은 중단을 예방하기 위한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원 상무위원회의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FAA가 중요한 안전 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하원 교통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 소속 샘 그레이브스 하원의원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누가 책임이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감독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에 대해 시스템 노후화 등에 따른 디지털 파일 이상이라는 변수가 세계 최강대국, 세계 최대 항공시장 미국의 국가 기간망인 항공 시스템의 취약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례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카카오 먹통 사태 등을 경험한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고 발생·재발을 막는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분석 등을 연구한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미국 항공정보 시스템 오류 사태 등은 일어날 확률이 0%에 가깝지만 한번 발생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가 엄청나게 파국적”이라며 “피하기 어려운 재난”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사고를 줄이기 위한 여러 노력이 가능하지만, 이런 노력을 할 땐 대개 비용이 아주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며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제언했다.
항공산업 전문가인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국내 항공체계 역시 자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FAA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며 “가장 공신력 있다고 평가받는 노탐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우리도 얼마든지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자체적인 운항 정보 시스템을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이지안·이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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