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고난의 해는 지고, 이제는 `GO - 樂`으로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완주 '눈앞'
"음악에 생명력 쏟았던 소중한 시간"
엔데믹 성큼… 올해 공연 80% 회복
3월에 우크라 작곡가와 협업 계획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코리안챔버 음악감독 '김민'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코로나로 칠흑같이 어두웠던 이 길을 모두가 겪었다. 고단했던 길의 끝에 서서, 문득 걸어온 자취를 돌아보는 시간. 속수무책으로 포기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3년이라는 긴 기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이하 KCO)는 이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기적 같은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완주를 이어왔다. 오는 2월, 두 번의 공연을 마치면 10회 공연, 46개의 전곡이 드디어 완성이다. 완주를 앞두고, 음악감독 김민을 만났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했던가. 그는 오로지 음악에, 생명력 넘치는 모차르트 음악에만 마음을 쏟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4시간 동안 리허설하면, 단 한 순간도 집중을 흩트릴 수가 없었어요. 모차르트의 음악은 계속 새롭죠. 전곡을 연주하면 '이런 부분은 좀 반복되고 비슷하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말이죠. 마르지 않는 샘이 흘러나옵니다. 그럼 우리는 쉼 없이 마셔야죠. 힘은 들어요. 힘은 정말 드는데, 지루할 틈이 없죠."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연주는 큰 도전이었다. 모든 음표를 마치 투명한 보석을 세공하듯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학자 이성률은 전곡 연주를 앞둔 KCO의 프로그램 북에 모차르트의 음악을 '백지장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단 한 방울의 잉크만 떨어져도, 티가 나는 음악. 그럼에도 김민이 모차르트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2015년, 창단 50주년을 맞아 KCO는 기존의 서울바로크합주단에서 이름을 새롭게 했다. 이에 따라 목·금관 주자들이 함께하게 되었고,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사운드의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했다. 한 마디로 50년을 동고동락한 현악 식구가, 새로운 가족을 맞아들이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집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같이 살게 된 거죠.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지만, 조화를 이루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균형 있는 사운드를 갖춘 연주단체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국내외를 포함한 연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만큼의 연주력을 위해서요. 그래서 고전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체임버 오케스트라 형태의 작곡이 시작된 시기죠."
◇다시 한번 깊게, 역사를 기록하는 악단
2019년 12월 28일과 2020년 1월 2일. 단 두 번의 공연 후 시리즈는 멈춰야만 했지만, 2022년 3월, 2년 만에 재개된 공연은 6월과 11월까지 무사히 이어졌다. 대관부터 협연자·지휘자·단원들의 일정까지 다시 맞춰 나가야 했지만, 전곡을 이뤄내겠다는 열정이 모두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특별히, 이번 전곡 연주에 함께한 지휘자 랄프 고토니의 리허설은 그가 가진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강의가 되기도 했다고. 전곡을 통해 완성된 'KCO만의 모차르트'는 무엇이었냐는 말에, 김민은 랄프 고토니가 남긴 말을 전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다양한 주제와 구성, 환상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음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살아있도록, 그러면서 유머가, 또 비극이 담겨 있도록 한다.' 고토니와 함께 한 이유는 이 음악적 철학과 해석에 모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담금질의 시간을 거치고, KCO의 모차르트는 단단해졌다. 단원들의 연주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김민은 "의도한 게 아닌데 이제 외부에서도 '모차르트' 하면 'KCO'를 떠올리는 것 같다"라며 쓱 웃음을 짓는다. "연주 실황들은 녹음 중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녹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어요. 모차르트 교향곡 녹음에는 웬만한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녹음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하지만 민간 비영리 공연 단체로서 곧 60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연주회 때 사용한 작은 영수증까지 모두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아카이브를 중요시합니다. 기록은 후대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자산이기 때문이죠. 최진 톤 마이스터가 이 작업에 함께 해주고 있는데, 얼마 전 고토니, 최진 감독, 저 이렇게 셋이 앉아 녹음된 걸 듣는데 꽤 만족스러운 결과임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전곡 연주가 끝나고 나면, 이 녹음의 행방도 결정되겠죠."
◇새로운 한 해를 꿈꾸며
내실을 다진 KCO의 2023년을 향한 발걸음은 당당하다. 수석객원지휘자로 함께 하고 있는 최수열과 '미래의 음악'에 중점을 두는 것이 첫 번째다. 예술의전당 현대음악 시리즈 무대에도 같이 오를 예정. 현대음악 앙상블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KCO Modernism'이라는 이름으로 단원들을 더 뭉칠 계획이다.
"저는 언제나 한 공연 내에서 레퍼토리의 대조를 중요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꼭 30~40% 이상의 현대 음악 레퍼토리를 포함해 왔죠. 처음에는 현대음악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무조건 싫어'가 아니라 '어떤 부분이 싫고, 어떤 부분은 왜 괜찮은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으면 해요. 소개해야 할 좋은 현대 작품은 정말 많아요."
3월에는 부부 바이올리니스트 파벨 베르니코프·스베틀라나 마카로바 협연으로 우크라이나 여성 작곡가 폴레바야의 신작도 연주할 예정이다. 파벨 베르니코프는 KCO와 함께 여러 유럽 무대에서 연주해온 연주자다. 우크라이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인 그에게 헌정된 이 작품을 연주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올해 공연들은 70~80%는 회복되었다고 느낍니다. 12월 공연에는 특별히 트럼피터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도 협연자로 초청했는데요, 트럼펫으로 연주하지 못하는 레퍼토리가 없는 놀라운 연주자예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어떤 공연을 보여드리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무엇이 진정한 클래식 강국을 이루게 하는가
KCO의 전신인 서울바로크합주단은 1960년대, 첼리스트이자 서울대 교수였던 전봉초(1919~2002)에 의해 시작됐다. 그가 서울대 음대에 '현악합주'를 교과 과정으로 만들길 건의했고, 이 시간을 거친 스승과 제자들이 모여 만들었다.
실내악 불모지에서 시작된 열정의 역사, 그 자체다. 지난해, 마치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처음 그때처럼, 젊은 연주자들이 모여 여러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나간 이야기를 꺼내자 김민은 "좋습니다. 정말 좋죠. 좋은 음악적 동료와 만나는 게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그게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며 반가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최근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콩쿠르 우승은 '독주자로서의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출발점이지, 음악가로서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 아닌데 이에 대한 인식에 착오가 좀 있는 상황입니다. 클래식 음악 강국이라는 건 '콩쿠르 우승자가 몇 명인지'와는 관계가 없어요. 독일로 예를 들자면 오케스트라는 133개, 그중 오페라 하우스 소속이 78개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도 없죠. 합창단의 개수가 몇 개인지, 전문 연주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은 얼마나 있는지를 세어야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음악계 어른으로서의 한 마디를 청하자 김민은 "명언은 할 줄 모르는데…"라며 고민에 빠졌다가 긴 답을 내놓았다. 어떤 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음악으로, 음악가로 굳건히 서 있는 그의 답이 이제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모두에게 길라잡이가 되길 바란다. "한 번쯤 '나는 과연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해보았다면, 이런 질문을 다시 스스로에게 해봤으면 합니다. '나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현재 나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자신의 답에 확인이 없다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음악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음악가로서의 자신을 돌아보며 동시에 음악의 길에 더 정진하는 자세, 열렬한 마음으로 불타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마음이 없다면, 객석에서 청중으로 음악을 즐기는 것이 자신을 위해 더 행복한 선택입니다. 끝으로, 음악에는 상호 작용하는 장르가 많습니다. 실내악과 합창,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음악을 폭넓게 체험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 속에서 나만의 독창성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음악 세계에 만드는 것에 매진하길 바랍니다."
글 월간객석 허서현 기자·사진=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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