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핵 보유’ 발언 파장 확산…“대통령이 안보 리스크”
윤석열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론 언급을 두고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직접 핵 보유 가능성을 말한 것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삼아온 한국의 대북 대응 기조를 흔들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은 대통령의 ‘입’이 안보 리스크가 됐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12일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론 발언 수습에 나섰다. ‘북핵 위험이 고도화할 경우’라는 전제를 단 원론적 발언이라는 취지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북핵 위협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말씀하신 것”이라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준수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현실적 수단으로서 한·미 간 확장억제를 실효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대통령 말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며 “안보라는 건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고 (핵 보유 언급은) 북핵 위협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국민을 지키겠다는 국군통수권자의 의지를 더 분명히 한 말씀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마무리 발언에서 “더 문제가 심각해져서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 악화를 전제로 뒀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파장이 일었다.
대통령실의 설명에도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핵 보유 가능성을 ‘가능한 선택지’로 열어둘 경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설득할 명분이 약화한다. 미국이 목표로 삼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상충하는 데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준수 의지에도 물음표가 달릴 수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이라는 중대한 안보 사안을 섣불리 다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야당은 대통령의 발언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더 높이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안보 무능을 감추기 위한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말 폭탄’으로 국민 불안과 시장 혼란이 증폭됐다”고 말했다. 임오경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핵폭탄급 말폭탄으로 이제는 대통령 자체가 대한민국 안보의 최대 리스크가 됐다”며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삼은 안보 포퓰리즘을 즉시 멈추라”고 했다.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배치를 하자는 것은 70년 동안 쌓아온 한미동맹을 발로 걷어차자는 주장”이라며 “미국 측은 우리나라의 핵배치를 두고 ‘무책임 하고 위험한 얘기’ ,‘미국은 지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고 상기시켰다. 이어 “우리나라의 핵 개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초래할 것”이라며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윤 대통령이 일본이 ‘반격 능력 보유’를 안보 문서에 넣은 것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점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날 “평화헌법을 채택한 나라(일본)가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냐고 하지만,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핵이 올 수 있는데 그걸 막기 쉽지 않다”며 “그걸 누가 뭐라고 하겠나”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 역시 ‘원론적 발언’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의 조치가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역내 불안이 가중되고 평화가 깨지는 상황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말씀한 것”이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 안에서 각국이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논의들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서는 일본의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 재무장 움직임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에게 다른 나라보다 더 두려운 안보 위협은 대통령의 입이 된 시대가 도래했다”며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채 평화헌법의 정신을 흔들 수도 있는 일본의 방위비 증액은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다’며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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