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기본권 침해” vs “다양성 보장”… 다시 심판대 오른 도서정가제

김혜리 기자 2023. 1. 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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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1월20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서 시민들이 도서정가제 시행 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에서 결정한 가격보다 서점에서 더 싸게 팔 수 없도록 한 제도로 신·구간 상관없이 할인율이 15% 이내로 제한된다./정지윤 기자

책을 일정 비율 이상 할인해 판매할 수 없게 하는 ‘도서정가제’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공개변론이 12일 열렸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 4항과 5항에 대한 헌법소원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이른바 ‘도서정가제’라 불리는 해당 조항은 책을 판매할 때 할인율을 1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가격은 10% 이상 할인할 수 없으며, 마일리지 등 경제상 이익도 5% 넘게 제공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의 과도한 할인 경쟁을 막고자 도입됐으나, 작가와 소비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공개변론의 핵심 쟁점은 도서정가제가 청구인 A씨의 직업의 자유·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웹소설 작가인 A씨 측은 도서정가제를 웹소설·웹툰 등 전자간행물 시장에도 적용하는 게 부당하다고 했다. A씨 대리인은 “전자책의 경우 작가가 가격을 매기는 데 결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데, 도서정가제 때문에 시장 수요에 할인 등의 방법으로 기민하게 대처할 기회를 뺏겼다”고 주장했다.

A씨 측은 도서정가제로 얻는 공익은 불분명하지만 피해는 크다고도 주장했다. A씨 대리인은 도서정가제의 시행 취지 중 하나인 ‘지역 중소서점 보호’를 예르 들면서 “웹소설은 중소서점에 유통되지 않는데, 웹소설 작가인 청구인이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중소서점 보호를 위해 자신의 기본권이 제한받는 상황은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웹소설이나 웹툰은 스낵컬처(출퇴근 시간, 휴식 시간 등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분류돼 오히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경쟁하는 구조다. 전자 출판물을 도서정가제 적용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도서정가제가 문화국가 원리 실현·경제 민주화 달성 등 공익 실현에 이바지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문체부 측 대리인은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출판사 및 저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해주고,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해 문화국가 원리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간행물이 발간된 지 12개월 후엔 정가를 다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가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도 했다.

양측은 도서정가제가 소비자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지를 두고도 공방을 벌였다. A씨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윤성현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시대가 바뀌면서 공공재가 아닌 상품으로서 기능하는 책들이 많아졌고, 특히 상업성이 강한 전자간행물 시장에선 도서정가제가 “소비자 보호라는 추상적 공익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가격 선택권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반면 문체부 측 참고인인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소장은 “한국에서 도서는 소비재가 아닌 공공재라는 의견이 여전히 다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인 국민이 지리적·경제적·문화적 여건과 관계없이 누구든 같은 가격으로 책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백 소장은 “도서정가제는 가격이 아닌 콘텐츠 경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제도로 많은 비영어권 문화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다”면서 “가격 경쟁에 취약한 이해관계자를 보호함으로써 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다. 소수 언어권인 우리나라의 학문과 문화 발전에 필요하다”고 했다.

헌재는 이날 들은 양측의 변론과 참고인 의견을 바탕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선고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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