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장애인 예산 보장하지 않아”… 전장연과 대화하고 싶다는 장애인 대표의 조언

김태호 기자 2023. 1. 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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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지하철 시위 반대하는 장애인연대 김민수 대표
“먹고 살자고 출퇴근하는 시민에겐 예산권 없어”
“장애인 권리 궁극 목표는 장애인의 동등한 사회 참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할 때면 전장연의 시위를 막아서는 이들이 있다. 경찰도, 서울교통공사도 아니다. 이들 역시 휠체어를 탄 장애인으로 ‘지하철 운행 정상화를 위한 장애인연대(장애인연대)’ 회원들이다.

김민호(56) 장애인연대 대표는 전장연 시위가 한창 화제가 되던 지난해 딸이 “아빠, 지하철 타지마. 사람들이 자칫 전장연으로 오해할라”고 말한 것을 계기로 문제의식을 갖게 돼 단체를 설립했다. 아직 회원 수는 10여명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12월 15일부터 전장연 시위에 대한 맞불 시위에 나서는 등 장애인 유관 단체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장애인연대의 행동은 시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장애인연대의 맞불 시위를 다룬 기사에는 “응원한다” “엉뚱한 서울시민을 볼모로 삼아선 안된다”는 댓글이 수십여개 달렸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장연 시위에 대해 ‘무관용 대응’ 원칙을 세웠고 서울교통공사는 6일 전장연과 박경석 대표를 상대로 6억145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장애인연대 대표와 회원들은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가 “장애인 혐오를 부추기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인 김 대표는 지난 30여년 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에서 일하며 장애 인식 개선에 힘 쏟았다. 현재는 시흥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21년 전장연이 지하철 탑승 시위를 시작하자 김 대표 역시 전장연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였다. 김 대표도 전장연이 촉구하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에 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를 지켜보며 ‘자칫 비장애인들의 장애인 혐오를 키우지 않을까’ 우려했다.

김 대표는 시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일반인이라는 게 문제”라며 “먹고 살자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장애인 권리 예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예산을 담당하는 국회나 기획재정부에 가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김 대표와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 장애인 인식 개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김 대표와 일문일답.

김민수 '지하철 운행 정상화를 위한 장애인연대(장애인연대)'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태호 기자

-장애인연대 결성 시기와 계기가 궁금하다.

“1993년 사고로 장애를 얻었다. 이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시흥시지회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 협회에서 일하면서 줄곧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지난해 전장연의 시위를 보고 ‘이건 아닌데, 우리가 그간 장애인 인식 개선하려고 노력했는데’라고 생각했다. 비장애인들이 불편을 겪지만 시위자들이 장애인이기에 항의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장연의 방식에 반대하는 뜻을 가진 이들과 지하철역에 나서게 됐다. 처음엔 나 포함 3명이 나왔는데 작은 이름이라도 붙일까 싶어 지금의 이름을 만들었다.”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가 장애인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20세기에는 우리나라에 장애인 복지 개념이 없다시피했다. 그래서 당시에 장애인 권리 운동을 하던 선배들은 의족·의수를 빼며 시위하는 등 강렬한 방식으로 시위했다. 당시에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는 하지 않았지만 보기엔 안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지하철 탑승 시위는 불특정 다수를 볼모로 잡는 행위다.”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 이유 중 하나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다.

“이동권 보장이라는 취지에 대해선 공감한다. 그러나 100% 완벽한 사회는 없다. 서울 지하철역 중에 18개 역만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한다. 그마저도 내년엔 전부 마련한다고 한다. 전장연은 ‘20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이 변한 게 없다’고 말하는데 20년 전과 지금 수치만 비교해도 나아지는 게 보일 것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달라지겠나. 비장애인도 100% 교통 편의가 완벽하지는 않다. 다수의 발목을 잡는 행위가 정당할 수는 없다.”

-전장연이 또 다른 요구사항은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이다.

“장애인 권리 예산도 충분히 반영되기를 바란다. 문제는 시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일반인이라는 것이다. 먹고 살자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장애인 권리 예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예산을 담당하는 국회나 기획재정부에 가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회 앞에서 진을 치고 국회의원을 못 들어가게 막으며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고 한다면 나도 동참하겠다.”

-지하철 탑승 시위에 대해 비판도 많지만 비장애인들의 관심을 불렀다는 의견도 있다.

“그간 비장애인의 관심이 적었다고 이제 와 볼모를 잡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장연이 지하철을 막아서 장애인 권리 예산이 보장된다면 앞으로 장애 유무를 떠나 모든 집단이 예산을 요구할 때 지하철을 막지 않을까. 나쁜 선례를 만들면 안 된다.”

-’전장연이 모든 장애인을 대표할 수 있을까’도 하나의 쟁점이다.

“대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국 230여개 시군마다 장애인협회 지회가 있고 또 지회마다 장애인자립센터가 2~5개씩 있다. 전장연 소속인 센터는 70여개라는데 전국 단위에서 전장연이 다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협회 등 전장연에 속하지 않은 협회들도 있다.”

-지난해 12월 첫 맞불 시위 이후 장애인단체 간 갈등이 생길 것이란 걱정은 없나.

“그런 우려 때문에 12월까지 반대 의견 표명을 참았다. 같은 장애인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한다는데 반대 시위하기가 힘들지 않았겠나. 똑같이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전장연 시위가 지속되면 다른 장애인단체들도 현장에 나와 전장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것 같다.

-지체장애인협회 등에서 일하면서 장애인 권리 향상을 위해 어떤 일을 했나.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장애 인식 개선이다. 장애인·비장애인 모두 ‘장애인은 도움받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장애인도 충분히 이웃을 돌보고 취약계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취약계층을 상대로 김장 봉사를 하거나 장애인 운동 대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했다.”

-장애인 권리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장애인도 노동하고 돈을 벌게끔 관련 제도를 손봐야 한다. 현재 다수의 장애인이 기초생활보장제도 혜택을 받고 있다. 1인당 월마다 90여만원 정도를 타는데 수급자가 노동을 해서 돈을 벌면 수급비 일부를 빼고 지급된다. 노동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에 준하는 수준으로 생활비를 벌 때까지는 근로소득이 발생해도 수급비를 제외하지 않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장애인이 노동 의지를 지니고 활발히 사회에 참여하면 국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장애인 권리 보장 운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

“장애인도 사회구성원으로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게 최고의 장애인 복지다. 지하철 멈춰 세워서는 이루지 못 한다. 한 번에 모든 편의시설을 갖추고 법을 뜯어고칠 수는 없다. 장애인들의 힘만으로 어렵다면 비장애인들의 인식을 바꿔 힘을 합쳐야 한다.”

-장애인연대의 향후 활동 방향이 궁금하다.

“우리가 지하철역에서 시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전장연과 대화하고 싶은 것도 있다. ‘서울시민이 장애인 권리 예산을 주는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같이 싸우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경찰이 첫 시위 이후 계속 접촉을 막고 있다. 그래서 전국을 돌며 비장애인 상대로 장애인연대 홍보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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