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천원 젤리·1500원 과자…오리온 착한가격 통했다

물가 급등 불구 가격 동결
점유율 높이고 이익도 커져
허인철 '역발상'에 역대급 실적
닥터유 3300만개 판매하고
캔디류 등 매출 44% 늘기도

오리온 '닥터유 단백질바'는 지난해 1~11월 약 3300만개 팔렸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34% 늘었다. 이 제품은 출시 후 4년째 편의점 가격 1500원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매출이 73% 늘어난 대표 젤리 제품 '마이구미'는 최소 9년 이상 1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오징어땅콩도 2011년부터 1500원이다. 사양산업으로 꼽히는 제과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판매 증가량을 보인 것이다.

'가격을 동결하고 점유율을 높이라'는 허인철 부회장(사진)의 주문이 시장에 먹히면서 오리온 실적이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12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잠정 실적 기준 오리온 국내 법인 매출은 84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9% 성장했다. 작년 말에 실적을 악화시킬 특별한 이슈가 없었기 때문에 지난해 국내 매출 증가율은 1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리온이 국내에서 연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2011년 이후 11년 만이다. 지난해 중국(9.5%), 베트남(38.3%), 러시아(80.7%)도 골고루 성장해 국내까지 합쳐 누적 매출 2조5557억원을 올리며 실적 기록을 갈아치웠다.

성장을 이끈 건 주력 사업인 제과 부문이었다. 국내 법인의 경우 지난해 3분기 오리온 주요 제품 매출(회계상 상품 제외)이 63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7% 늘었다. 같은 기간 경쟁 업체인 롯데제과, 해태·크라운제과의 제과 매출 증감률이 미미한 것에 비하면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이다.

카테고리별로 보면 증가세가 뚜렷하다. 마이구미, 왕꿈틀이 등이 포함된 껌·초콜릿·캔디류의 3분기 매출은 44.4% 증가했다. 초코파이, 후레쉬베리 등 파이류는 30.7%, 고소미 등 비스킷류는 20.5%, 포카칩, 오징어땅콩 등 스낵류는 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후레쉬베리(50%), 초코파이(26%), 견과바(21%)를 찾는 소비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제과시장은 국내에서 오랜 기간 사양산업의 대표격으로 여겨졌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영향으로 주 소비층인 유소년과 청소년 인구가 급감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인구구조 변화뿐 아니라 수입 제품이 늘고, 디저트 등 제과 대체재가 다양해진 점도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성장이 둔화됐지만 소비자가 충동 구매하는 기호식품 특성상 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오리온이 호실적을 낸 것을 두고 허 부회장의 역발상 전략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4년 부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는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고 내부에 주문해왔다. 소비자가 큰 고민 없이 사는 저관여식품 특성상 가격 경쟁력은 이커머스뿐 아니라 대형마트, 편의점 등 채널에서 판매할 때 큰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온은 지난해 9월 제품 60개 중 44개의 가격을 동결하고 16개 제품가격을 평균 15.8% 인상했다. 2013년 이후 9년간 동결하다가 처음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경쟁 업체들이 매년 제품군을 바꿔가며 순차적으로 가격을 올린 것과 차이가 있다는 평가다.

가격과 품질을 지키기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아꼈다. 수익성 떨어지는 사업은 과감히 접고 '1+1' 같은 묶음 할인행사를 없애 판촉비를 최소화했다. 국내외 법인 단위로 따로따로 구매했던 원부재료를 전 법인이 통합 구매하도록 일원화해 생산 원가를 절감했다. 오리온의 영업이익률(작년 3분기)은 15.8%로 5~6%대인 식품업계에서 월등히 높다. 오리온은 앞으로 원부자재 가격과 에너지 비용이 하향 안정화될 경우 제품의 양을 늘리거나 가격을 인하할 방침이다.

오리온의 신사업도 탄력을 받고 있고 있다. 그중 하나인 그래놀라 제품은 출시 후 4년 만인 지난해 매출이 3배 증가해 134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시리얼 시장에서 그래놀라 점유율이 콘플레이크를 넘어선 상황에서 오리온의 그래놀라 시장 점유율은 18%로 높아졌다. 바이오 부문에선 대장암 진단키트 등이 임상 단계를 밟고 있고, 음료(용암수) 사업도 점진적으로 확대 중이다.

[진영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