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 "탈세계화 시대 끝낼 주도권, 韓과 아시아가 쥐고 있다"
미중이 그린 무역지도, 동아시아 주요국 협력땐 협상력 발휘
경제 우방 고려 없는 IRA···미국 산업 발전에도 끔찍한 정책
올 글로벌 경제 핵심 변수는 연준·ECB의 '긴축 통화 행보'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를 2013년부터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경제 석학 애덤 포즌 소장이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탈세계화 추세를 봉합할 수 있는 주체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꼽았다. 한국을 비롯해 경제력을 갖춘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연합하면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복원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포즌 소장은 이달 초 진행한 서울경제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호주·싱가포르·인도네시아와 뉴질랜드까지 아우르는 아시아 경제권이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의 경제 문제를 공격하고 다시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상호 신뢰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며 “이런 사이클을 멈추기 위해 노력할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의회나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자유무역적”이라면서 세계화 복원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곳으로 한국과 아시아 국가를 지목했다.
포즌 소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부터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비판하는 선봉에 서 있는 학자다. 2018년 미국이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를 내렸을 당시에도 중국을 겨냥한 반자유무역 조치가 중국에 타격을 입히기보다 무역 보복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그의 우려는 현실화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은 깊어졌고 미국의 정권이 교체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자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지역화(Regionalization) 패러다임이 더욱 자리를 잡으며 자유무역 기조를 밀어내고 있다.
포즌 소장은 경제적 역량이 큰 아시아 주요국들이 협력할 경우 미국과 중국이 일방적으로 편가르기식 요구를 하기 어려워진다고 봤다. 그는 “한국도 가입을 고려하고 있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나 싱가포르와 뉴질랜드가 주도하는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같은 협력체를 통해 중국과 미국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서로를 이끌고 도울 수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이 협력한다면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든 ‘서로를 배척하는 편 가르기에 따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수출 비중이 높고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 경제 영향권에 놓인 한국 입장에서 일종의 발상 전환을 요구하는 조언이다. 주요 2개국(G2)의 경제 전략을 단지 우려만 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 경제 강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무역 질서를 회복하는 주도권을 쥐라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포즌 소장은 당장 협력이 필요한 과제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응을 꼽았다.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규정한 IRA 법안에 따라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주요 동맹국의 전기차 생산 업체들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보게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현대차그룹이 2025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55억 달러를 투자해 짓는 조지아 공장을 치켜세우며 자신의 치적으로 삼았지만 정작 법안에서는 동맹에 대한 배려가 없어 논란이 일었다.
포즌 소장은 “미국이 시장경제나 한국과 일본·독일·프랑스 같은 경제 우방을 위한 사업적 고려 없이 이런 정책을 편 것은 끔찍한 일”이라며 “IRA 법안은 다른 나라들에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미국 소비자들과 산업 기반, 친환경 산업의 발전 측면에서도 나쁜 정책”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포즌 소장은 IRA 개정이 미국 내부 동력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회에서 처리하지 않는 이상 정부가 수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포즌 소장은 “그래서 여러 국가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이라며 “미국에 ‘아니다’라고 할 말을 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포즌 소장은 특히 한국과 일본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반도체나 자동차·조선 등 여러 산업에서 (서로) 성장하며 기여할 여지가 크고 또 미국과의 군사적 유대 강화나 기후변화 등 지역 안정 측면에서 공통된 이익이 많다”며 “양국이 어떻게 협력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성장이 둔화되는 정도로 끝나고 침체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은 괜찮다”고 단언했다. 포즌 소장은 “한국을 비롯한 고소득 국가들은 지난해보다 달러 대비 통화 가치가 올라가고 이미 낮아진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하락의 혜택을 볼 수 있어 지난해보다 고통이 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개발도상국에는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포즌 소장은 “미국과 유럽·중국의 성장 둔화는 수많은 개도국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며 “특히 중국의 회복세가 약해지는 것은 남아시아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등의 성장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해 세계경제 최대 변수로는 ‘금리’를 꼽았다. 포즌 소장은 “올해 에너지나 공급망, 부동산 시장 등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의 긴축 행보와 이에 따른 경제 영향이 가장 큰 변수라는 점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반면 달러화 강세로 인한 각국의 구매력 하락과 에너지난, 반도체를 제외한 공급망 문제는 완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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