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CEO 잔혹사, 소유분산기업이 자초했다
사외이사와 한통속 결정도
'상법 제382조의 3' 개정 통해
주주이익 위한 결정 유도해야
이른바 '소유분산기업'이 화두다. 소유지분이 잘게 분산돼 대주주 또는 주인이 없는 기업들이다. 포스코, KT 같은 과거 공기업이나 금융그룹 대부분이 해당한다. 최근 최고경영진 선임 과정에 대해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의사를 밝히고, 금융당국은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 점검에 나서면서 논란도 없지 않다. 하지만 특유의 지배구조 자체는 해묵은 숙제다. 한번 취임하면 경영성과가 별로여도 손쉽게 3연임까지 이어가며 뛰어난 후계자들을 고사시키는 사례가 빈번했음을 봐왔다. 일각에선 '로또'라고 할 정도였다.
2009년 초 포스코 출입기자 시절 얘기다. 새 정부와 코드가 맞는다고 소문이 파다했던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이 갑자기 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일성을 묻는 질문에 정 신임 회장은 "차세대 CEO(최고경영자)를 위한 후계자를 미리 양성하고 경쟁시켜 CEO 교체 과정을 자연스럽게 만들겠다"고 했다. 워낙 기대가 컸던 터라 후임 출입기자에게 인수인계까지 해줬던 내용이지만, 그의 포스코 후계자 양성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
KT도 마찬가지다. 내부 출신으로는 12년 만에 수장을 맡은 구현모 대표가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기업"을 취임 일성으로 외쳤지만, 연임과정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연임 결정 과정에서 후보군에 누가 올라 경쟁했는지 알려진 게 전혀 없다. 흔히 작성하는 후보군 롱리스트나 숏리스트 과정도 들리지 않았다. 현직 프리미엄을 내려놓고 경쟁했어도 충분히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금융업계도 별 차이는 없다. 신한금융, 하나금융에 평소에 후계자로 양성해놓은 CEO 후보가 있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못 한다. 최근 회장 연임을 놓고 어수선한 우리금융그룹은 이제야 그것도 외부 헤드헌터업체 2곳에 차기 후보 5명씩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KB금융그룹이 CEO후계자 양성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올해 말 그 결과를 봐야 평가가 가능하다.
"후임자는 언제 정하신 건가요?"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 최고경영자만 14년 맡다가 퇴임한 하영구 회장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늘"이었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CEO 유고시를 대비해서라도 회사를 이끌 복수의 사람을 평소에 양성하고, 본사에도 주기적으로 평가해서 보고한다고 했다. 일종의 리스크 관리 차원인 셈이다.
후계자를 양성하는 순간 레임덕이 온다고 생각해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추는 한국 기업들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모 금융그룹에선 역대 회장들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본인에게 충직한 후계자를 선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본인을 조금이라도 위협할 사람이라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중간에 하나둘씩 제거했다.
사실 후계자 양성은 단순히 누굴 지목하는 게 아니다. 실제 CEO가 됐을 때 회사 전체적인 업무를 볼 수 있게 평소에 다양한 업무를 맡게 하고 평가하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사회가 나서야 한다. CEO가 스스로 나설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는 주주를 위해 경영진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 주된 책무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소유분산기업 CEO 선임 과정을 보면 주주 이익은 완전히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하는 '상법 제382조의 3'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법 조항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해놨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처럼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처럼 회장이나 CEO의 이익과 일치하면 회사에도 이익이 되는 것인 양 사외이사들이 한통속이 되어 버린다면 결국 외부 개입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유분산기업에 후계자 양성프로그램처럼 외풍을 막을 최고의 전략은 없다.
[송성훈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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