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측 항의 쏟아진 강제동원 토론회···“굴욕적 해법안 졸속으로 밀어붙여”

정대연 기자 2023. 1. 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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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 참석했던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피켓을 든 청년들로부터 항의받고 있다. 이준헌 기자

외교부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최로 12일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피해자 유족 등의 거센 항의 속에 파행했다. 피해자 측은 정부가 일본 피고기업 대신 국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를 통한 대위변제’ 방식을 졸속으로 밀어붙이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는 서민정 외교부 아태국장·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의 발제와 피해자 유족, 전문가, 법률가, 언론인 등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유족, 지원단체 관계자, 취재진 등으로 행사장은 시작 전부터 북적였다. 많은 참가자들이 ‘정부는 한·일회담 내용과 청구권 협정을 준수하라’는 내용 등의 항의 현수막을 걸고 손팻말을 들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정진석 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비상대책위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정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우리는 과거사를 직시하면서 한·일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며 “한·일 양국의 성의 있는 접근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행사장 밖에서 “어떻게 이런 망국적인 토론회를 열 수 있느냐”는 일부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다. 정 위원장은 이날 오후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들과 함께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 접견 등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토론회는 다양한 입장을 가진 유족 및 지원단체 관계자들의 항의로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대한민국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요청을 했어도 일본은 호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 일본의 사죄와 기금 참여 같은 것에 대해서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오늘 이 자리는 일본 측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피해자들을 설득하겠다라고 하는 국면 전환의 장”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청중 사이에서 항의가 쏟아졌다. “당신은 교수가 아니다” “부끄러운 줄 알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친일파” “매국노” 등 고성이 퍼졌다. 정부안을 수용하는 쪽에서는 “옳은 말”이라고 외쳤다. 최우균 법률사무소 자유 변호사가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놓을 때도 항의가 이어졌다. 소란이 계속되자 좌장을 맡은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예정됐던 청중 질문을 취소하고 2시간을 넘긴 토론회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일부 참석자는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한 서로의 주장을 이어가며 욕설을 주고받았고 몸싸움이 벌어질 기미가 보이자 행사 진행 요원들이 이들을 말리는 모습도 보였다. 행사 종료 후에도 일부 청중은 무대로 올라가 패널들에게 앞선 발언에 대해 항의했다.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행사장 안팎에서 피해자 측은 정부가 형식적인 토론회를 명목으로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방안을 밀어붙이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토론회에서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외교부에) 발제문을 달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전날 오후 6시에야 주셨다”며 “(토론회) 절차가 한두 번 더 있어야 하고 치열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현장에서도 청중들에게 발제문과 토론문은 제공되지 않았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한국이 먼저 피해자들에 대해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는 것이 일본의 책임을 완벽하게 면책해 주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 피해자 측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가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 앞서 기자들에게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토론회 시작 직전 피해자 측과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 등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가해 기업의 사죄와 배상이 빠진 채 한국기업들의 기부금만으로 판결금을 대신해 지급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해법안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이 안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2015 한·일 합의’와 같은 외교참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당초 토론회가 한일의원연맹과 공동주최로 열린다고 발표했으나,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연맹 소속 야당 의원들 항의에 연맹 회장인 정 위원장만 이름을 올렸다. 일부 피해자 지원단체도 정부가 피해자들을 들러리 세우려 한다며 토론회에 불참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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