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그래도 살 만한 세상
추운 겨울 언 몸을 녹이는 길거리 간식은 오고 가는 이들의 작은 행복이다. 특히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붕어빵은 겨울철 대표 간식인데, 요즘 밀가루, 팥 등 재료 값이 크게 올라서인지 거리에서 붕어빵을 찾기 어렵다. 붕어빵과 역세권 단어가 합쳐진 '붕세권'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붕어빵 파는 곳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까지 생겼을 정도다. 문득 붕어빵을 팔며 매달 아동후원금을 보내주시는 한 후원자가 떠오른다. 시각장애 1급으로 큰 글씨조차 제대로 안 보이지만, 아이들의 근황을 듣는 것이 작은 행복이라 말하며 이렇게 경기가 어려운 때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라는 그를 보며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일찍이 영화로도 알려진 고(故) 김우수 씨 역시 마찬가지다. 천애고아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김우수 씨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보다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게 됐다. 그 이후 중국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며 힘들게 번 월급 70만원을 쪼개 5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종신보험의 수익자도 어린이재단으로 지정할 만큼 아이들을 돕는 일에 진심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홀로 숨을 거두면서 무연고자 장례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재단은 직접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고, 당시 한 검사의 도움을 받아, 재단 후원회장인 최불암 씨가 상주를 자청했다. 빈소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조화와 김윤옥 여사를 비롯 각계 인사들과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존엄한 생을 살았던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이 이야기는 이듬해 '철가방 우수氏'(윤학렬 감독)로 영화화됐고, 주연배우 최수종의 노개런티 선언부터 제작 전반이 각계각층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져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청소년을 위한 좋은 영상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웃들이 점차 늘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 개인 기부 총액은 9조2000억원으로 전년도 9조3000억원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지만 2010년 6조6000억원이었던 것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실제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곳도 나눔을 실천하는 후원자가 55만여 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거액을 내는 후원자도 있지만, 90% 이상이 소액정기후원자다. '기빙코리아 2020'에 따르면, 기부와 봉사에 참여해본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총 70점 만점에 47.25점으로 참여하지 않은 그룹의 38.26점에 비해 23%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당장 피부에 와닿는 높은 물가로 타인을 위해 선뜻 기부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도 앞선 두 후원자님의 삶을 통해 경제적 여유가 기부의 절대조건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기부 경험 자체가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최근에는 디지털환경 변화에 따라 기부 형태도 진화하고 있어 지금이야말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기부가 가능하다. 물품을 구입하고 받은 포인트나 마일리지 기부, SNS 또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다가 단지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 또 평소 본인이 관심 있던 분야의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거나, 온라인기부 전용 몰에서 굿즈를 구매하며 그 수익금으로 아이들을 돕기도 하는 등이 그것이다.
자발적인 나눔은 나눔을 행한 사람의 행복과 만족이 더 커지는 '온광효과(Warm Glow Effect)'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따뜻한 빛은 후원금을 지원받는 아동의 삶에도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니, 이 겨울 '온광효과'의 기운이 더 널리 퍼지길 바란다.
故 김우수 후원자를 향한 많은 추모 댓글 중 이런 글이 기억에 남는다. '천사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습니다.' 각박한 세상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들이 도처에 있음을 본다. 그래서 살 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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