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극단적인 애플의 재무제표
자사주 매입 후 소각에 올인
1년 순익보다 순자산이 적어
영원히 성장하는 기업 없어
이익 감소 땐 폭락할 수밖에
우연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주가수익비율(PER)보다 큰 이상한 기업을 발견했다. 투자 알고리즘을 개발하면서 많은 재무제표를 보았지만 이런 것은 처음 봤다. 현재 S&P500그룹의 평균 PBR는 3.9, PER는 20.5다. 우리나라 상장 종목 집합은 PBR 0.9, PER 11.2다. 이처럼 PER가 PBR보다 훨씬 큰 게 정상이다.
순익은 배당으로 좀 쓴 다음 대부분 자산에 더해진다. 1년 순익만 자산에 온전히 더하면 자본잠식 상태가 아닌 한 PBR는 PER보다 커질 수 없다. PBR가 PER보다 크다는 것은 순자산이 1년 순익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사기성 회계인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기업이 애플이다. 그러기 힘든 기업이다.
처음에는 자사주 매입 소각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순자산을 1년 순익보다 적게 남길 정도로 심하게 할 리는 없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최근 10년간 애플의 연간 순익은 47조원에서 127조원으로 커졌다. 눈부신 성장이다. 10년 전 애플의 순자산은 127조원이었다. 10년간 총 755조원의 순익을 냈는데 현재 순자산이 고작 64조원으로 줄었다. 지난 10년간 얻은 이익은 전혀 자산에 더해지지 않았다. 10년간 164조원을 배당으로 쓰고 701조원을 자사주 소각에 썼다. 거의 '몰빵' 소각이다.
미국은 배당에 대해 15%의 세금을 낸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주식 감소 효과로 주식 가치가 상승하니 배당과 같은 효과가 있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자사주 소각은 주주 친화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애플은 자사주 소각의 극단적 예다. 현재 애플의 순자산은 64조원이고 시가총액은 2631조원이다. PBR가 무려 41배다. 시총에 비하면 순자산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순자산이 고작 1년3개월 운영비용에 불과하다. 작년 순익은 127조원으로 PER 21이다. 1년 내 갚아야 할 빚(유동부채)이 196조원으로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유동자산) 170조원보다 26조원 더 많다. 재무상태표만 놓고 보면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 다만 지금은 순이익 마진율이 25%로 탁월해서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대부분의 우량 기업은 이익의 부침에 대응할 만한 자산을 충분히 갖고 비즈니스를 한다. 이익이 감소할 때는 갖고 있는 순자산 가치가 주가의 하락을 어느 정도 방어한다. 애플의 경우는 순자산을 시총 대비 2.5%밖에 갖고 있지 않다. 이익이 구조적 감소 추세로 돌아서면 주가가 폭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를 들어 애플 폰의 교체 주기가 현재 40개월에서 60개월로 길어진다면 지금 같은 고성장은 힘들어질 수도 있다.
현재 상황은 스티브 잡스가 죽고 팀 쿡이 애플을 맡은 후 일어난 일이다. 이것으로 주가를 많이 끌어올렸으니 일견 주주 친화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애플의 자사주 소각은 합리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것 같다. 이런 유형의 매력은 절대 영구적일 수 없다. 영구적 매력을 가지는 기업을 선호하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도 애플의 대주주다. 지난 몇 년 애플의 자사주 소각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그렇지만 잠재적 부작용에 대한 드러내지 않은 불안이 있을 것이다.
애플은 안정적인 이익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탁월한 기업임은 분명하다. 다만 현재 애플의 재무제표는 자사주 소각이라는 방향으로 편집적인 수준까지 나간 것이다. 저런 수준까지 밀어붙인 것은 이익의 지속적 성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사상 어떤 기업도 영원히 성장하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에 의한 안전 마진을 거의 없애버린 애플의 행태는 느긋한 룰렛게임 같은 것이다. 잡스가 생존했다면 소각에 사용한 701조원 중 상당 부분은 더 창의적인 곳에 사용했을 것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주)옵투스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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