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2주 만에 입장 180도 바뀐 한국과 중국

김지성 기자 2023. 1. 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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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자들이 격리를 하지 않게 해 달라. 최대한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해 달라. 항공편을 증편해 달라."

얼마 전까지 한국이 중국에 요청했던 사항들입니다. 주요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만 고강도 방역 정책,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빗장을 꽁꽁 걸어 잠갔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중국에 오는 사람은 코로나19 감염 여부와 상관 없이 무조건 8일간 격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중국에 거주지가 있는 사람은 5일간의 강제 격리 이후 3일간은 자택 격리가 허용됐지만, 어쨌든 8일간 격리를 해야 하니 격리를 감수하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중국과 한국 간 항공편 수도 충분하지 않아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이 중국에 갈 때 항공권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여행사에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외교 경로 등을 통해 수시로 항공편 증편과 자유로운 왕래 보장을 요구해 왔습니다.

중국 국경 개방 선언 이후 한·중 입장 180도 바뀌어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발단은 지난달 27일 중국이 국경 개방을 전격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지난달 7일 국내 방역 완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제로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 급격히 전환했습니다. 이어 20일 뒤 입국자 격리마저 폐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완전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열었습니다. 국경 개방은 중국 국내 방역을 완화할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막상 중국이 국경을 개방한다고 하자, 다른 나라들의 표정은 엇갈렸습니다. 태국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반색했습니다. 거대한 수의 중국 관광객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태국은 부총리가 공항에 직접 나가 중국 관광객을 맞기까지 했습니다.

태국은 부총리가 직접 공항에 나가 중국인 관광객 환영 행사를 개최했다.

일본, 가장 먼저 검역 강화 발표…한국은 가장 센 조치


반면, 서방 국가들은 우려했습니다. 중국 방역 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했기 때문입니다. 짧은 기간에 수억 명에 달하는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신종 변이 출현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중국발 입국자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묻혀 올 것이란 우려가 확산했습니다. 가장 먼저 검역 강화를 발표한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 중국이 국경 개방을 선언하자마자 중국발 입국자 전원에 대해 PCR 검사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탈리아와 인도, 타이완 등도 PCR 검사 방침을 밝혔고, 한국도 지난달 30일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검역 강화 기류에 동참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한발 더 나갔습니다. PCR 검사 뿐 아니라 단기 비자 발급 제한과 중국발 항공편 추가 증편 제한까지 걸고 나왔습니다. 주요 국가 중에서 단기 비자 발급을 제한한 것은 한국이 유일했습니다. 중국이 최근 한국과 일본만을 상대로 비자 발급 제한 등 잇따라 보복 조치에 나선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일본은 가장 먼저 조치를 발표했고, 한국은 가장 센 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SNS에 "한국 격리 시설 열악…중국인만 노란색 카드"


상황은 불과 2주 만에 역전됐습니다. 지금은 중국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격리를 없애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한·중 두 나라는 지난달 24일만 해도 당시 65편인 항공편을 100편으로 늘리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 측의 요구를 중국이 수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이 다시 항공편을 늘리지 않겠다고 하면서 합의는 백지화됐습니다. 최근 중국 언론에는 "한국발 중국행 항공편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이 급등했다"는 내용이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중국의 열악한 격리 시설이 문제가 됐습니다. 격리 시설마다 다르긴 했지만, 일부 격리 시설은 지저분하고 냉장고도 없고 식사도 부실하다는 불만이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해 7월 부임한 정재호 주중대사도 격리 시설이 열악해 교체를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격리 시설이 열악하다는 주장이 중국 SNS에 잇따라 올라오고 있습니다. 격리 시설에 침대도 없고 온수도 안 나온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한국 방역 당국이 중국인에게만 노란색 카드를 목에 걸게 한다는 얘기까지 더해지면서 중국 SNS는 들끓고 있습니다. '한국'이란 검색어가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올랐고, 하루 만에 30억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SNS에는 "한국 방역 당국이 중국인에게만 노란색 카드를 목에 걸게 했다"는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관영 매체 "한국, 중국인 범죄자 취급"…반한 감정 확산


한국의 격리 시설이 열악하다는 주장은 대부분 근거 없는 것이었고, 노란색 카드는 단기 입국자와 장기 입국자를 구분하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습니다. 장기 입국자는 해당 거주 지역에 가서 PCR 검사를 받아도 되지만, 단기 입국자는 대부분 거주지가 없어 공항에서 PCR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구분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 관영 매체까지 나서 반한 감정을 부추겼습니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공동 사설에서 "한국이 중국인을 범죄자 취급한다"며 "모욕적"이라고 적었습니다. 조금만 확인하면 중국 네티즌들의 주장이 허황된 것임을 바로 알 수 있을 터이지만, 의도적으로 호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 매체는 중국 정부가 외교상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속내를 대변해 왔다는 점에서, 한국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때 중국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항문 검사까지 했던 중국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중국이 한국만을 콕 집어 표적으로 삼으면서 중국 내 반한 감정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입니다. 교민들 사이에선 자칫 제 2의 사드 사태가 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한국 방역 당국이 중국인들을 범죄자 취급한다"며 "모욕적"이라고 주장했다.

한·중 서로에 "정치적 의도"…경제 피해 우려


한·중 두 나라는 서로를 향해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됐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과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할 때 한국은 이들 국가에서 온 입국자들의 코로나19 확진률은 공개하지 않고서 이번 중국발 입국자의 확진율만 공개하고 있다"며 "정치적 쇼가 의심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다른 나라처럼 PCR 검사만 하면 되지, 왜 비자 발급 중단 같은 선제적 조치를 내놓았느냐는 뉘앙스로 읽힙니다. 한마디로 한국이 '오버'했다는 것인데,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한국 내 반중 감정에 편승한 것 아니냐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한국 외교부도 "중국이 방역 이외의 다른 고려 요인으로 입국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중국의 비자 발급 중단 같은 보복 조치 역시 정치적 목적이 담긴 것 아니냐는 겁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선 보복 조치를 내놓지 않았는데, 한·미·일을 갈라치기 하려는 것 아니냐, 과학적이 아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일각에선 중국이 국내 코로나19 폭증에 대한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한국을 희생양 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방역을 둘러싼 공방이 치킨 게임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교민들이, 우리 관광·면세 산업이 나아가 중국과 최대 교역을 하고 있는 우리 경제가 그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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