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추모 공간은 시민 곁에 있을 수 없을까-취[재]중진담
이혁재 2023. 1. 12. 16:43
추모 공간 시민 일상공간과 함께해야
"일상에서 '참사 되풀이 말라' 생각하는 계기"
지난달 21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10.29 참사 추모 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정리됐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주변엔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만이 임시 추모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참사 추모 공간을 어디에 마련해야할지 논의를 시작하고 싶어 유가족 협의회에 연락했고 매우 조심스러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지금 추진한단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시는 애초 야외 시민분향소를 대신할 임시 추모 공간과 유가족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 3곳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접근성과 비용 측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설상가상 해당 건물의 임차인이 추모 공간 등 활용 동의를 철회하면서 결국 논의는 멈췄습니다.
참사 진상 규명이 중요한 유가족들은 사실 추모 공간 자체에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면 어디에 마련돼야 할 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게 취재진의 생각이었고, 그렇게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 이효숙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불행,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시민들이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쉽고 편하게 추모할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곳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 꽃을 놓고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는 이효숙 씨. 이효숙 씨는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면 유가족에 대한 위로를 넘어 우리 사회가 다시 참사를 겪지 않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힘들게 입을 뗐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떤 공간이면 좋을까. 취재진은 우리 사회가 참사를 겪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과거 사레를 찾아봤습니다. 1995년 6월 서울 서초구에서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사고로 막내동생을 안타깝게 잃은 김문수 씨를 만났습니다.
"저희는 현장에다가 희생자 한 분당 한 평씩이라도, 안 되면 주변이라도 현장에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면서 부탁했었습니다."
"참사 현장에 추모 공간이 있으면 부지를 팔아 보상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 주변 땅값이 내려간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댔죠."
사실상 돈의 논리로 외면당한 건데, 실제로 삼풍백화정 붕괴로 인한 희생자 520명을 기리는 위령탑은 참사 현장에서 6km 정도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위령탑 옆으로 뻗은 경부고속도로에 맘 먹고 찾아오기란 쉬워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김 씨는 미국을 예로 들며 내심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땅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습니까."
"안전을 무시하고 또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면 우리가 이후에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가를 생생히 뉘우칠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참사를 기억하면서 되풀이되지 않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계기들을 만들어야 해요. 기억 공간이라고도 하죠."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참사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이 참사를 막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추모 공간이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는데,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추모 공간을 '사건이 끝났다'는 의미로 여긴다는 점이 문제라고 설명합니다.
"성수대교 붕괴 참사 추모 공간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도보로 가기 굉장히 어려운 곳에 있어서 기억 공간으로서 기능을 못 합니다."
추모 공간이 일상 공간에 있어야 무의식적으로라도 사람들에게 안전에 대한 생각을 환기하는 기능을 한다는 겁니다. 다만 추모 공간에서 '희로애락'을 누린 경험이 없는 만큼 불편함을 견딜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추모 공간은 없는 걸까요?
김 교수는 경기 안산시에 만들어지고 있는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힘을 냈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신효성 군의 어머니 정부자 씨와 취재진이 방문해보니, 추모 공간 부지 옆으로는 호수를 끼고 산책하는 시민들과 소풍나온 어린이들이 보였습니다.
추모 공간에서 앞으로 아이들이 그림대회도 할 수 있고 청소년들이 춤도 출 수도 있다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월호참사를 기억할 것이라는 상상이 곧 현실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후세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해요.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면 아이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추모공간 고민을 당장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참사는 시민 모두가 겪은 슬픔이었기에 극복하는 방안을 우리가 먼저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관련 기사]
[뉴스7/포커스M]'삼풍·세월호' 겪었는데…이태원 추모 공간은?
https://www.mbn.co.kr/news/society/4893477
[ 이혁재 기자 yzpotato@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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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참사 되풀이 말라' 생각하는 계기"
조심스러운 유족들…임시 추모 공간 마련도 버거워
지난달 21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10.29 참사 추모 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정리됐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주변엔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만이 임시 추모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참사 추모 공간을 어디에 마련해야할지 논의를 시작하고 싶어 유가족 협의회에 연락했고 매우 조심스러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지금 추진한단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시는 애초 야외 시민분향소를 대신할 임시 추모 공간과 유가족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 3곳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접근성과 비용 측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설상가상 해당 건물의 임차인이 추모 공간 등 활용 동의를 철회하면서 결국 논의는 멈췄습니다.
참사 진상 규명이 중요한 유가족들은 사실 추모 공간 자체에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면 어디에 마련돼야 할 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게 취재진의 생각이었고, 그렇게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 이효숙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불행,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시민들이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쉽고 편하게 추모할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곳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 꽃을 놓고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는 이효숙 씨. 이효숙 씨는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면 유가족에 대한 위로를 넘어 우리 사회가 다시 참사를 겪지 않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힘들게 입을 뗐습니다.
"미국처럼 우리가 참사를 대했더라면…."
그렇다면 정말 어떤 공간이면 좋을까. 취재진은 우리 사회가 참사를 겪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과거 사레를 찾아봤습니다. 1995년 6월 서울 서초구에서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사고로 막내동생을 안타깝게 잃은 김문수 씨를 만났습니다.
"저희는 현장에다가 희생자 한 분당 한 평씩이라도, 안 되면 주변이라도 현장에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면서 부탁했었습니다."
"참사 현장에 추모 공간이 있으면 부지를 팔아 보상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 주변 땅값이 내려간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댔죠."
사실상 돈의 논리로 외면당한 건데, 실제로 삼풍백화정 붕괴로 인한 희생자 520명을 기리는 위령탑은 참사 현장에서 6km 정도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위령탑 옆으로 뻗은 경부고속도로에 맘 먹고 찾아오기란 쉬워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김 씨는 미국을 예로 들며 내심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땅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습니까."
"안전을 무시하고 또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면 우리가 이후에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가를 생생히 뉘우칠 수 있었을 겁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참사…기억하면 가능성 줄여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참사를 기억하면서 되풀이되지 않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계기들을 만들어야 해요. 기억 공간이라고도 하죠."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참사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이 참사를 막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추모 공간이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는데,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추모 공간을 '사건이 끝났다'는 의미로 여긴다는 점이 문제라고 설명합니다.
"성수대교 붕괴 참사 추모 공간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도보로 가기 굉장히 어려운 곳에 있어서 기억 공간으로서 기능을 못 합니다."
추모 공간이 일상 공간에 있어야 무의식적으로라도 사람들에게 안전에 대한 생각을 환기하는 기능을 한다는 겁니다. 다만 추모 공간에서 '희로애락'을 누린 경험이 없는 만큼 불편함을 견딜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추모 공간은 없는 걸까요?
김 교수는 경기 안산시에 만들어지고 있는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누구든 거부감 없이 편히 즐겨 찾는 공간"
"우리가 조금 더 힘을 냈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신효성 군의 어머니 정부자 씨와 취재진이 방문해보니, 추모 공간 부지 옆으로는 호수를 끼고 산책하는 시민들과 소풍나온 어린이들이 보였습니다.
추모 공간에서 앞으로 아이들이 그림대회도 할 수 있고 청소년들이 춤도 출 수도 있다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월호참사를 기억할 것이라는 상상이 곧 현실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후세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해요.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면 아이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추모공간 고민을 당장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참사는 시민 모두가 겪은 슬픔이었기에 극복하는 방안을 우리가 먼저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관련 기사]
[뉴스7/포커스M]'삼풍·세월호' 겪었는데…이태원 추모 공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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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혁재 기자 yzpotato@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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