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면]'테니스' 대신 '나'를 봅니다...스물여섯, 오사카의 스매싱
오광춘 기자 2023. 1. 12. 16:43
I see You. 우리말로는 '나는 당신을 봅니다'로 해석되죠. 영화 '아바타:물의 길'에 나오는 한마디입니다. 직역하면 '너를 본다'로 풀이되지만 그 속뜻을 헤아리자면 '물의 길'만큼이나 깊습니다. '너'라는 정체성을 들여다본다는 의미도, '너'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도, 나아가 그 이상의 뜻까지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다시 'I see You'입니다. 온전히 이 말은 오사카 나오미(26)에게 향합니다. 오사카는 세리나 윌리엄스가 은퇴한 후 여자 테니스의 최고 스타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테니스 선수라면 누구나 고대하는 호주 오픈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놀랐죠. 그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도 오갔습니다. 그리고 오사카는 오늘(1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임신 사실을 알렸습니다. '2023년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면서 '아이가 언젠가 내 경기를 보고 누군가에게 “우리 엄마야”라고 말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오사카는 일러야 1년 뒤 호주오픈에서나 다시 코트에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물여섯, 스포츠 선수로 최고를 찍고 있고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에 쉬어간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죠. 선수들은 오랫동안 전성기를 유지하기 위해 애면글면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을 포기하는 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거죠. 오사카의 선택이 남다른 이유입니다.
오사카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신에게 더 행복한 선택이 무엇인지 묻고, 그에 따라 결정했습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최근 일고 있는 사회 현상인 '조용한 그만두기'(Quietly quitting)'와 빗대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테니스보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지난해 프랑스 오픈을 앞두고는 기자회견을 거부해 파문을 일으켰죠. 스타라는 이유로 세상의 온갖 질문에 시달리고, 정신적 상처까지 감수하는 문화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스포츠계의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거죠.
오사카는 이번에도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어쩌다 찾아오는 한 번의 우승이 전하는 희열보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바라면서.
오사카는 이번에도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어쩌다 찾아오는 한 번의 우승이 전하는 희열보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바라면서.
#넷플릭스가 최근 내놓은 다큐멘터리 '브레이크 포인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감춰진 테니스 선수들의 정신적 고통을 조명했습니다. 1년 내내 언제나 경쟁에 내몰리고, 그러면서 빡빡한 대회를 소화해야 하는 선수들의 삶은 평안과는 거리가 멉니다. 끊임없는 패배의 상처와 쉴 수 없는 강행군의 피로, 나아가 팬들의 조롱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오사카는 그런 테니스 선수들의 운명에 반기를 들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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