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대신 배상금 지급부터” 해법 공식화…피해자 “일본 면책 방안에 불과”(종합)
피해자 측 “강제징용은 다르다… 본질 벗어난 왜곡된 프레임”
외교부가 12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위한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제3자를 통한 변제’라는 원칙에 따라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변제를 담당할 ‘제3자’는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될 예정이다.
이에 피해자 측이 줄곧 요구한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참여 ▲일본 기업·정부의 사죄 등이 담기지 않아 격한 반발이 이어졌다. 결국 공개토론회는 피해자 측의 고함과 항의로 충분한 의견 교환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마무리됐다.
주최 측인 외교부 소속 서민정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12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 발제에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으로) ‘제3자의 대위 변제’,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 등으로 논의·검토했다”며 그간의 검토 경과를 밝혔다.
그러면서 서 국장은 “핵심은 ‘법리 선택’보다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도 우선 판결금을 받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며 “원고(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3자’로부터 변제를 수령할 경우 지급 주체와 관련해선 현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이 바람직하다고 (민관협의회에서) 의견이 수렴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판결금은 지난 2018년 10월과 11월 우리 대법원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三菱) 중공업 등 일본 전법기업 2곳에 내린 판결에 따른 배상금이다. 당시 법원은 이들 기업에 각각 강제동원 피해자 1인당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서 국장은 이어 “정부로서는 반드시 원고인 피해자 및 유가족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수령 의사를 묻고 충실히 설명드리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이 바람직한 이유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목적 ▲소요되는 절차·시간 절약 가능 등을 언급했다.
특히 서 국장은 “강제집행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이 한국 내에서의 경제활동 및 자산을 철수해 압류할 자산이 국내에 부재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원고들이 현금화로 충분히 판결금을 받으실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본이 이미 표명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히 유지 계승하는 게 중요하다”며 양국 간 입장이 대립된 상황에서 피고 기업의 판결금 지급을 이끌어내기는 사실상 어려운 점을 민관협의회 참석자 분과 피해자 측에서도 알고 계신 것으로 이해한다. 창의적인 접근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보다 과거 일본 정부가 밝혀왔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유감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은 “재단이 재판 승소 피해자 15명 문제에 관여한 기관이 될 경우 우선은 청구권 자금 수혜 기업의 기금을 받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청구권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약정한 잔여 금액 40억원을 투입하게 된다면 유족들만을 위해 쓰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외에 심 이사장은 특별법 제정 방안도 제시했다. 해당 법은 재단을 통한 대납은 확정판결 강제징용 피해자 15명을 대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체 피해자를 포괄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결국 외교부는 ‘중첩적 채무 인수’ 방식을 통해 우리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발생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채무를 재단이 대신 변제해주는 방향을 중심으로 추진할 전망이다. 현재 재단도 이를 위해 정관까지 개정한 상태다. 이 같은 방식이 확정·추진될 경우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배상금 재원은 한일 양국 기업 등 민간의 기부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피해자 측 관계자들은 정부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전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피해자) 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외교부와의 신뢰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난 상황’이라며 “사후적으로 일본 측이 (배상금 재원 마련을 위한) 기금을 출연하겠다는 걸 합의문 없이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에서 검토한 안(案) 자체에 대해 “본질을 벗어난 왜곡된 프레임”이라며 “일본 측의 사과는 사실 인정, 유감 표시가 아니라 (기존) 담화를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임 변호사는 “정부안에 대해 (더) 치열한 토론을 거쳐야 한다”며 “피해자 측이 반대하는 안을 굳이 신속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도 “피해자분들은 청춘을 되돌릴 수단이 없기 때문에 사죄를 말씀하신 것”이라며 일본 기업과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한국이 먼저 (기금에)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일본의 책임을 면책해주는 게 아닌지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자 재단 이사로 활동 중인 한문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는 “유족들이 나이 80살을 넘겨 이런 자리서 호소하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며 “초조함과 울분을 저만이 아니라 모든 유족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전문가들도 대거 참여했다. 특히 공개토론회 회의장이 고성과 항의로 술렁인 건 박홍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모두 발언에서 시작됐다. 박 교수는 정부의 설득과 노력에도 일본의 호응은 없었다면서 “이제 일본의 사죄와 기금 참여 같은 것에 대해서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방청석에 앉아 있었던 피해자 측은 박 교수를 가리켜 “매국노”, “친일파가 역사 왜곡에 앞장선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 등 반발이 일었다. 일부 피해자들은 박 교수의 마이크를 아예 꺼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최우균 법률사무소 자유 변호사가 이어 정부가 해법으로 추진하는 ‘중첩적 채무 변제’ 즉 제3자가 일본 피고기업을 대신해 피해자에 배상하는 방식에 대한 법리를 설명하자 방청석에서는 “강제징용은 다르다”, “그만해라”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방청석의 격한 반발로 결국 최 변호사는 발언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패널 토론이 끝난 뒤 방청석으로 마이크가 넘어갔지만,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일부 청중들이 토론회 발제자와 토론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기도 했다. 또 처음 발언권을 얻은 한 피해자 단체 대표는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들이 모여 있는 토론회 같다”고 지적했다. 더는 정상적인 진행이 어렵다는 상황 판단에 따라 공개토론회는 서둘러 마무리 됐다.
한편 정부 측은 일본 기업·정부의 호응 조치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도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 국장은 “다음 단계는 그간 수렴한 의견 등을 반영해 정부가 속도감과 책임감을 갖고 해법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일본 측을 만나서 다시 협상하고 계속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선은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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