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안 팔리니 세입자라도 받아 채웁니다"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입주시기를 맞은 새 아파트가 팔리지 않다 보니 건설회사가 보유분을 전세로 돌려 세입자를 구하고 있어요. 이런 물량을 눈여겨보는 것도 전세 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미분양 주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악성'으로 불리는 입주 후 미분양이 서울 강남권에서도 생겨나면서 과거 주택시장 침체기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례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미분양 물량을 건설회사가 직접 소유한 채 전세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12일 서울 강남권 중개업소 얘기를 종합해보면, 분양시장과 함께 새 아파트 입주시장 역시 난맥상을 보이며 다양한 미분양 해소책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배경엔 시장 침체 속 미분양 물량이 늘어난 이유가 작용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5만8천27가구다. 전월(4만7천217가구) 대비 22.9%(1만810가구) 급증했다. 미분양이 한 달 새 1만 가구 이상 늘어난 것은 지난 2015년 12월 이후 6년 11개월 만이다.
이에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최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미분양 아파트 6만2천가구를 위험선으로 보는데, 매달 1만 가구씩 늘어나고 있다"며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가장 최근 발표된 미분양 통계는 원 장관이 말한 '위험선'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처럼 미분양 물량이 계속 쌓이면서 공급 주체들로서는 경고등이 발등에 떨어진 모양새다. 분양 일정을 이미 완전히 소화한 뒤에도 물량을 털어내지 못하는 악성 미분양까지 늘어나고 있어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회사 보유분을 전세로 돌려 자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최근 부동산 침체기조가 짙어지고 규제완화에도 실수요자들의 매수심리가 즉시 반응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사용 승인이 나고 입주를 시작했을 때 차선책으로 직접 시행사가 전세를 내주는 것이다. 판매만을 고집할 경우 금융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입주 후 미분양이 적체됐을 시기에도 미봉책으로 비슷한 사례가 나온 바 있다.
실제 강남구 도곡동 일원에서 분양을 마친 소규모 단지는 21세대 중 7세대만이 분양됐는데, 물량 소진에 어려움을 겪자 최근 전세 세입자를 채워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세대의 분양가는 약 310억원인데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세대의 분양가가 208억원에 달한다.
강남구 도곡동 J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새 아파트 분양 성적이 저조하고, 물량 소진이 더뎌지자 분양을 끝까지 밀기보다 직접 전세 세입자를 구하려는 시행사들이 늘고 있다"며 "오히려 팔리기만을 하세월 기다리는 것보다 입지도 좋고 신축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전세 세입자를 우선 받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회사 보유분을 전세로 돌려 임차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업계 전문가들은 입지와 주변시세를 잘 파악하고 계약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초구 신원동 L중개업소 대표는 "5~6년 전에도 강남권 브랜드 대단지에서 미분양이 많이 나왔는데, 전세로 들어온 세입자가 일정 시기가 지나 해당 물량 매수에 나선 바 있다"면서 "이로 인해 하락장 조정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가격이 올라 지금은 분양 당시보다 3~4배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새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 기회가 생기겠지만, 수요자로서는 성급하게 전세에서 매매로 돌아설 필요는 없고, 경기 흐름과 주변 입지 등을 직접 꼼꼼히 살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회사로서는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 보유분을 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며 "세입자 입장에선 개인 대 법인 간의 임대차 계약이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양 호황기 시절 핵심 입지에 공급돼 입주를 앞둔 회사 보유분의 경우 물량 자체도 적고, 현재 시장 상황은 어렵지만 입지나 인프라 면에서 증명됐기 때문에 전세로 들어가도 안심할 수 있다"며 "다만, 미분양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아 회사가 세입자를 채워 전세금이라도 확보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이거나, 미분양 무덤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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