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집단 초상화
렘브란트 판레인 '직물제조업자 길드 이사들'
세계 무역 장악한 거상들 묘사
1702년 설립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동서양 상권 아우르며 황금시대 열어
6명의 개성을 제각각 표현하면서
3개의 수평선 통해 유대감도 부각
네덜란드선 단체 초상화 대유행
황금시대(黃金時代·Golden Age)는 문명의 진보가 절정에 달해 사람들이 평화와 안정,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시대를 말한다. 황금시대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기원전 740~670년)의 시 ‘노동과 나날’에서 비롯됐다. 헤시오도스는 농경기술과 노동의 신성함을 서술한 시에서 인류 역사를 황금의 종족, 은의 종족, 청동의 종족, 영웅의 종족, 철의 종족의 시대 등 다섯 시대로 구분했다.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황금종족은 마음속에 고통이 없이 궁핍함이나 비참함을 느끼지 않고 신들과 같은 생활을 영위했다. 슬픈 세월이 그를 억압하지도 않았고 다리와 손의 힘도 언제나 한결같았으며 모든 불행으로부터 벗어나 기쁘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죽을 때도 잠을 자듯이 죽었다.”
국가도 황금시대를 누린다. 17세기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황금시대 네덜란드는 국제 경제와 금융, 무역의 중심지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다. 1602년 네덜란드 상인들이 설립한 동인도회사는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이자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로 동서양 무역권을 장악했다.
해양 강국의 막강한 위상은 당시 자료의 수치로도 알 수 있다. 1634년 네덜란드 상선은 2만4000여 대로 당시 유럽 전체 상선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경제 성장의 황금기를 맞이한 네덜란드는 엄청난 번영을 누리면서 무역, 군사, 과학, 예술 등에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던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부와 번영을 보여주는 걸작이 있다.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렘브란트 판레인(1606~1669)의 대표작 ‘직물제조업자 길드 이사들’(1662)이다.
1661년께 렘브란트는 직물제조업자 길드 이사들의 단체 초상화를 의뢰받고 1662년 이 그림을 완성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왕과 귀족들이 초상화의 주요 고객이었지만 네덜란드는 해상무역과 금융거래로 큰돈을 번 상인들이 건물이나 집을 장식하려는 용도로 초상화를 주문했다. 특이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개인 초상화보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단체 초상화가 더 인기가 많았다. 이는 유럽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문화 현상이다.
이 작품은 유럽 최고 상업도시이자 직물무역의 중심지인 암스테르담의 슈탈호프(직물길드 본부) 건물을 장식할 용도로 제작된 집단 초상화다. 길드는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 도시를 중심으로 장인이나 상인이 상호 지원과 각자의 산업 이익을 위해 조직한 조합이다. 길드는 사업권 면허를 통해 해당 지역의 생산권이나 상권을 독점했는데 대표적으로 직물 상인, 포도주 상인, 금세공인, 화가 길드가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모직산업은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직물조합의 세력이 강했다.
암스테르담시장이 임명한 직물조합 이사들은 직조공이 조합원에게 판매하기 위해 제공한 천의 품질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고 1년 임기로 활동했다. 이들은 그림에 나오는 길드 건물에서 매주 세 번 직물 견본 질감과 색상 검사를 하고 품질 등급을 4단계로 보증하는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그림을 감상해보자. 초상화에는 6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챙이 넓은 검은 모자와 넓은 흰색 깃을 단 검은 복장을 한 5명의 남자는 길드 이사들이고 유일하게 모자를 쓰지 않고 뒤에 서 있는 남자는 고용인이다.
5인의 이사는 샘플을 승인받은 포목업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지급한 비용 및 날짜가 기록된 장부가 놓인 진홍색 천이 깔린 단상에 앉아 조합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에서 사람들을 압도하는 권위가 느껴진다. 렘브란트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각도를 선택해 이사들의 높은 지위와 품위를 강조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사들은 조합원에게 회계 결산과 사업 보고를 하는 중이고 고용인은 등 뒤에 서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 중앙에 앉아 있는 회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테이블에 놓인 장부 위에서 오른손으로 제스처를 취한다.
렘브란트는 6명의 인물이 배치된 위치와 자세, 성격, 얼굴각도, 표정을 각각 다르게 표현해 개성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독창적 구성 장치를 사용해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예를 들면 세 개의 수평선이 사용됐는데 첫 번째는 단상 가장자리와 왼쪽 의자 팔걸이를 따라 이어지는 선, 두 번째는 5개의 모자와 고용인의 머리로 이어지는 선, 세 번째는 배경의 실내 나무벽을 따라서 이어지는 선이다. 세 개의 수평선은 인물들을 통합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아울러 렘브란트 특유의 명암법과 색채(화려한 진홍색 테이블보는 배경의 황금빛 색조와 어우러져 그림 전체에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고 남성복의 강한 검정과 흰색을 고상하고 조화로워 보이게 한다), 인물들의 주름 하나까지 섬세하게 그려낸 세밀 묘사와 자유로운 붓질을 통한 표현기법으로 인물들에게 부여된 직책의 중요성과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정직함의 보편적 가치를 이끌어냈다. 이런 요소가 어우러져 이 작품은 가장 위대한 집단 초상화로 평가받는다.
영국의 렘브란트 연구자 존 몰리뉴는 “네덜란드가 배출한 최고 예술가는 렘브란트이며 그의 그림들은 황금시대의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이라는 찬사를 바쳤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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