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론과 책임론 ‘팽팽’…강제징용 해법 토론회, 여론 수렴 충분했나
정부 “피고기업 판결금 지급 사실상 어려워…창의적 접근 필요”
피해자측 “일본이 책임지지 않는 案에 대해 어떤 호응했나”
법조계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 채권자 동의 없이 효력 발생”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제3자로부터 판결금을 대신 변제받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피해자들에게 수령 의사를 묻는 동의절차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마련중인 최종안 발표를 앞두고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밝힌 내용인 만큼, 큰 틀에서의 방향성이 공개된 것이다. 이에 대해 피해자측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토론회에서는 고성과 항의가 뒤섞여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피해자측은 추가적인 토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그간 검토 경과를 발표했다.
서 국장은 법리적인 시각에서 “민사 사건으로서의 채권, 채무 이행의 관점에서 판결금은 법정채권으로 피고인 일본기업 대신 제3자가 변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민관협의회에서) 검토됐다”며 “우리 피해자분들이 판결금을 제3자로부터 받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제3자 변제’,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논의했지만 “검토를 거듭할수록 핵심은, 어떤 법리를 택하느냐보다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도 우선 판결금을 받으실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며 “정부는 반드시 원고의 피해자 유가족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수령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절차가 진행될 경우,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했기 때문에 압류할 자산이 없다는 현실론이다. 이 경우 피해자인 원고들이 배상금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배상금 지급 주체로는 새로운 재단을 설립하는 경우 비용과 절차, 시간이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해 현존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바람직하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측의 ‘성의있는 호응’에 대해 서 국장은 “판결금 지급 주체가 재단이라고 해도, 재원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며 “양국 입장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피고기업의 판결금 지급을 이끌어내기 사실상 어려운 점을 피해자측에서도 알고 계신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일본기업의 배상금 기여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서 국장은 “이 부분에 대해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이 강조하는 일본의 사과에 대해 서 국장은 “피고기업의 재정 기여, 일본정부나 피고기업의 사과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회의적인 견해가 (민관협의회에서) 제시된 바 있다”며 “일본이 이미 표명한 통렬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하게 유지,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재단의 앞으로의 큰 역할이 기대된다”며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일관계에서 이번 현안을 계기로 선순환이 되도록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서 국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정부는 한일 양국 간 대화 모멘텀이 다시 조성돼야 한다는 점과 대법원 판결 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양국 관계가 경색됐기 때문에 대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서 국장은 “정부 출범 이후 일본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일본 정부에 성의 있는 호응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고, 이에 대해 일본도 진지하게 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은 “재단이 재판 승소 피해자 15명 문제에 관여하는 기관이 될 경우 우선 청구권 수혜 기업의 기금 받아 써야 한다”며 “(청구권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약정한 잔여 금액 40억원을 쓰게 된다면 다른 청구권 수혜기업에서 최소한 40억원 이상의 기금을 받아 이 돈은 오로지 유족만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구권 수혜 기업에 재단 기부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의한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체 피해자를 포괄하는 해결책으로 특별법 제정을 강조했다.
토론에 참석한 피해자측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2차 민관협의회가 끝난 후 피해자측에 사전 통지 없이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양금덕 할머니 인권상 수상이 외교부의 제동으로 사실상 취소된 점을 언급하며 “외교부와 대리인단, 지원단체는 신뢰 관계가 완전히 파탄났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설명한 방안에 대해 “과거에 거론되는 방안들은 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했지만, 지금은 ‘2+0’이다”라며 “한국 정부가 실제 지원하고 있는 재단이 주체가 돼, 한국 기업의 돈을 가지고, 한국 피해자의 채권을 소멸시키는 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과 외교적 교섭을 했다고 하는데, 일본이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는 안에 대해 그동안의 교섭에서 일본이 어떤 호응을 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부 최종안은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의 재원으로, 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채권을 소멸시키고 이 절차를 한국이 먼저 시작하면 이후 일본 기업의 참여를 기대한다는 것”이라며 “일본측은 담화를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인데 성의있는 호응이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이 소송은 단순한 민사소송이 아니라 역사소송”이라고 성격을 규정하며 “한국이 먼저 피해자분들에게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는 것은 일본의 책임을 완벽하게 면책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에는 박홍규 고려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교수, 최우균 법률사무소 자유 변호사, 길윤형 한겨레신문 기자 등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문제해결이 가능한 차선이냐, 불가능한 최선이냐가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잘 표현한 말”이라며 “대법원의 판결대로 일본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다양한 방안을 소개했다.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국제사법제판소에 공동제소하는 방안이 있지만, 이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관련한 일체의 금전적 지원을 요구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에는 식민지 불법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되 피해자 구제는 우리 정부가 나서는 방안도 제시했다.
최우균 변호사는 현재 방안으로 제시되는 제3자 변제 방식과 병존적(중첩적) 채무인수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제3자 변제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무관한 제3자가 채무 변제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민법 제469조에 따라 논리적으로는 제3자의 재산으로 일본 기업을 대신해 변제할 수 있지만, 이 조항에는 ‘당사자의 의사 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때는 그러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채권자가 제3자 변제를 원하지 않으면 변제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최 변호사는 “민법 규정은 기본적으로 당사자간에 사적원칙이 적용돼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중요하지만, 본건은 대법원 확정판결로 채권을 발행한 것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판례가 확립되지는 않았지만 학계에 의하면, 대법원 확정판결로 발생된 채권은 ‘약정채권’이 아닌 ‘법정채권’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채권 추심을 반대하더라도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있다.
민법상 ‘면책적 채무인수’는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제3자가 채무자를 대신해 채무를 떠안는 방안이다. 이 경우 기존의 채무자는 채무를 이행할 이유가 없이 ‘면책’이 된다.
현재 강제징용 배상 해법으로 거론되는 병존적(중첩적) 채무인수는 이와 달리, 기존 채무자는 그대로 채무를 유지하면서 제3자가 채무를 ‘연대’해 부담하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험회사가 가해자의 채무를 인수해 공동으로 변제하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이는 채권자를 중첩적으로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다만 이 경우 채권자의 동의는 필요가 없다. 최 변호사는 “판례에 따르면 채무를 인수하는 경우, 중첩적 채무인수인지 면책적 채무인수인지에 대해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갈리면 중첩적 채무인수로 본다고 돼 있다”며 “채권자의 동의가 없어도 중첩적 채무인수가 성립하고 효력이 발생한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서 국장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수령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병존적 채무의 경우 피해자의 동의가 없어도 제3자 변제가 가능하지만, 이 경우 원하지 않는 피해자에게 강제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4차례 민관협의회에 참여한 길윤형 한겨레 기자는 “민관협의회에서는 재단이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금을 모아 지불하되, 전제 조건으로 유족과 피해자분들이 원하는 피해기업의 사죄와 기금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희의 결론이었다”며 “외교부의 얘기를 들으니 일본 기업의 사과와 배상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한국 정부가 미리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으로, 협의회에서 이야기한 전제조건이 많이 무너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로, 정권이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이렇게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우리가 너무 쉽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배상금 문제의 신속한 해결이 필요한 이유로 오랜 기간에 걸친 사법적 판단과 해법안 논의 과정으로 고령의 피해자들이 아직도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한 해법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문재인 정부부터 진행돼왔던 것이며, 불안정한 세계 상황에서 경색된 한일 관계로 양국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움직이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며 “강제징용 문제이든, 한일관계이든 이대로 괜찮은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의 설명이 피해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들은 신속한 배상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피해자들에 성의 있는 사과와, 이를 이행하는 피고기업의 배상 참여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양국 경제활동과 관계 개선을 위해 사과와 배상을 양보하라는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피해자측이 추가적인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만큼 향후 의견수렴 절차가 계속 진행될지 주목된다. 정부가 구상하는 해법안이 공개된 후에도 이에 대한 여론 수렴과 공론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silverpaper@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왜 안돼, 큰일났다” 할머니 몰던 차에 손자 사망…피해가족 소송
- “매트리스가 500만원? 이러니 이케아 가지” 착한 가격 우기는 ‘침대’ 배신
- “왜 하필 송혜교와 붙어서” 대항마에 200억 베팅한 티빙 어쩌나
- “21살 고졸, 대기업만큼 번다” 월수입 600만원, 음식 배달보다 이게 낫다?
- “유명 유튜버도 빠졌다” 일본 여행객 난리난 ‘신기한 앱’ 뭐길래
- “고데기로 열 체크” ‘더 글로리’ 그 장면, 17년전 실화…“손톱으로 딱지 뗐다”
- 20대男 몸무게가 고작 38㎏…룸메 굶기고 때려 죽게 한 20대 ‘징역 20년’
- “치익” 소리에 송혜교도 주저앉은 ‘병’…알고보니 의외로 많다?
- 애완견 죽으면 어떻게 하세요… '쓰레기봉투에' vs '땅에 묻는다'
- “첫눈 반한 아내, 결혼 두달전 딴 남자 아이 낙태…이혼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