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방통위…한상혁 버텨낼까
방송통신위원회가 초유의 직원 법정 구속 사태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방통위의 업무 과정이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한상혁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을 비롯해 일선 공무원들까지 충격에 빠졌다. 눈앞으로 다가 온 TV조선 재승인 심사 등 실무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위원장은 1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이기에 참담한 심정"이라며 "여전히 관리자들의 결백을 신뢰한다"고 밝혔다.
서울북부지법은 전날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차모 방통위 과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문경훈 영장전담판사는" 중요 혐의 사실에 대한 사실 소명이 있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모 방통위 국장은 혐의 사실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고 법적으로 다툴 영역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2020년 4월 방통위가 TV조선 평가 과정에서 점수를 고의로 낮춰 '조건부 재승인'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TV조선은 재승인 기준(650점)을 넘긴 653.39점을 받았지만, 중점 심사 항목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의 실현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에서 기준점(105점)에 못 미치는 104.15점을 받아 조건부 재승인에 그쳤다. 방통위 직원들이 심사위원들에게 낮은 점수를 주도록 종용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이날 "사무처는 심사를 지원하는 제한적 역할만 수행하는데 지원단 직원들이 (종편 심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오는 4월 21일 재승인 기간이 종료되는 TV조선에 대해 또 다른 평가를 앞두고 "어떻게 진행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담당 직원이 구속 수사를 받게 됐는데, 같은 업무에 다른 공무원들도 참여를 꺼리지 않겠냐는 우려다.
특히 방송사에 대한 재허가·재승인 업무는 방통위의 고유 업무 중 하나인데, 이번 사안으로 인해 심사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더욱이 심사위원으로 언론학자의 참여가 필수인데, 이번 수사 대상에 TV조선 심사 당시 참여했던 학계 인사들도 포함된 것도 문제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공정성과 도덕성을 두루 갖춘 인사를 모셔야 하는데, 법률적 문제가 될 수 있다면 누가 선뜻 참여를 결심하겠나"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9월 언론정보학회는 이번 논란을 두고 "언론학자 탄압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악재는 산적해 있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 국무조정실도 조만간 감찰을 마무리 지을 전망이다. 전날 한 위원장의 측근으로 평가받는 이모 방통위 정책연구위원마저 수사기관에 입건됐다. 감사원과 검찰에 이어 국무조정실까지 방통위를 향한 칼날을 벼리면서, 사실상 방통위가 당분간 제대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개점휴업' 상태에 놓일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방통위의 위기가 여권의 한 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팽배한 만큼, 오는 7월 31일 임기가 만료되는 그의 거취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한 위원장은 직간접적인 사퇴 압박을 받으면서, 국무회의 배제에 이어 신년 업무보고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날 입장문에서 한 위원장은 방통위를 향한 수사, 감사, 감찰 등 전방위 압박에 관해 "중도 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면 즉시 중단돼야 할 부당한 행위"라며 반발했다.
'사면초가'에 내몰린 한 위원장이지만 거취 결단까지는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이날 관련 질문에는 "감사와 수사가 내 거취와 관련된 것이라면, 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그런 것이라면 이런 방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날 입장문에서도 그는 "법률로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위원회뿐만 아니라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라며 "이견의 조정과 해소는 토론과 협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 일방적 강요에 의해 가능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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