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자동차산업, 세 번째 도약 위해
차량용SW·전장부품 성장
전기동력차 양산 매진
SDV 네트워크 협력 필요
다사다난하던 임인년이 지나고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자동차산업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증폭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장률이 둔화하면 자동차 수요도 감소한다. 그런데 올해 세계 자동차 수요는 약 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낮아지는데 자동차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그동안 반도체 공급난으로 밀려 있던 선주문 물량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국내 완성차업체도 지난해보다 10% 증가한 700만대 중반의 판매 목표를 설정했다. 지난해 세계 3위 판매업체로 등극한 여세를 몰아 2014년에 기록한 800만대 고지를 또다시 돌파하기 위해 달려가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 완성차와 부품 수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국내 완성차업체의 해외 생산 판매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7년 이후 움츠러든 자동차업계가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듯하다. 정부도 지난해 8월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발표하자 준비해 온 '글로벌 자동차산업 3강 전략'을 9월 말 발표하고, 미래차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제도 정비에 적극 나서면서 우리 자동차산업의 기를 살리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이달 초 3년 만에 CES가 대면 행사로 열렸다. 전시회의 주역인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뿐만 아니라 자동차업체도 미래 모빌리티 관련 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코로나19와 공급망 단절로 혼미에 빠진 자동차업체들과 모빌리티시장 진입에 적극성을 띠고 있는 ICT 업체 간 경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단지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업체의 참가는 부진했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해 650만대의 전기동력차를 판매, 세계 전기차시장의 70%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소비자들이 구매보조금 일몰에 앞서 지난 4분기에 전기동력차 구매를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야디(BYD)는 전년 대비 3배 증가한 185만대의 전기차를 판매, 131만대에 그친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로 떠올랐다.
세계 전기차 시장은 당분간 중국업체들이 성장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이 2025년 이후 중국을 제치고 2030년에는 세계 최대의 전기동력차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자율주행차 시장은 어떠한가. 레벨 5 수준의 완전자율주행차 상용화 시기는 2030년 이후로 지연되고 있다. 반면에 자동차업체들은 소비자들이 편의성과 안전성 높은 자동차를 찾자 2018년부터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 Software Defined Vehicle)의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해 왔다. SDV란 연결성에 의존해 하드웨어(HW)가 아닌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구동하는 이동수단을 의미한다.
이미 완성차업체들은 OTA(Over the Air)의 무선통신기술을 이용해 자동차의 기능과 성능을 개선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얼마 전 제너럴모터스(GM) 크루즈의 로봇 택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야밤에 사고를 일으키자 크루즈는 시험 운행하고 있는 80대의 차량을 거둬들인 후 하루 만에 SW를 업그레이드, 문제를 해결했다. 전동화와 전장화에 따른 산업전환이 시급한 과제인 우리 자동차업계는 SW 지향의 산업전환이라는 또 다른 과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업체도 2025년까지 18조원을 투자, SDV 개발을 마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우리 자동차산업이 전동화를 넘어 자율주행화로 가기 위해서는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이 뒷받침해야 한다. 국내 자동차업체와 정보통신기술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지만 이를 구성하는 차량용 SW, 센서와 고성능 컴퓨팅(computing) 기술 등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매킨지 컨설팅은 지난 2019년 2025년 신차의 1%가 레벨 3 ADAS를 장착할 것이라고 전망한 적이 있다. 또한 2030년에는 신차의 10%가 레벨 3 ADAS를 장착하며, 2%는 레벨 4 ADAS를 장착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미국의 컨슈머 리포트(Consumer Report)는 아직 ADAS가 사용자 친화적이지 못하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전장화·전동화·자율주행화에 따라 차량용 SW와 전장부품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자동차 조립 부품 수에서 차지하는 전장부품 비중이 70%를 넘고, 자동차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SW 관련 매출이 점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스텔란티스는 2030년 200억유로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2030년 세계 자동차 판매를 1억600만대로 가정할 때 전장부품과 SW 시장은 2019년의 2580억달러에서 2030년 5150억달러로 약 2배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품목별로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2030년에 880억달러로 증가하고, 배터리를 제외한 파워 전자부품 수요는 400억달러로 증가하며, 차량용 SW 수요도 2030년에 2019년 대비 2.8배 증가한 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국내 자동차산업은 전장부품은 차치하더라도 차량용 SW 역량마저 취약, SDV는 물론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나마 전장부품 생산 가능 기업 수는 ICT업체 진입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차량용 SW 전문업체 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 SW 산업이 20만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게임 개발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차량용 SW 개발인력은 100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인력의 잦은 이직은 물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 해외로도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2030년까지 1만명의 차량용 SW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밝혔으나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교수 인력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학의 미래차 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있지만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미래차 산업에서 방향을 잃고 자동차 내수도 인도에 밀리는 등 자동차산업이 쇠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비교가 잘못됐다. 인도는 3륜차를 자동차로 분류하지만 일본과 우리나라는 분류하지 않는다. 자동차산업의 양적 성장은 질적 역량이 없는 한 어렵다. 우리 자동차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와 엔지니어 수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부족한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래 모빌리티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인력과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하이브리드 카에 매몰돼 있다가 전기동력차 초기 시장 확보에 실패했다. 일본도 우리처럼 차량용 SW 산업이 취약하다 보니 자율주행차 개발도 허둥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자랑하던 일본이 디지털화 부진과 오너 리스크, 전문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완성차업체가 전기동력차 판매에서 일본업체들을 앞서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중국시장에서 일취월장하고 미래 모빌리티 개발을 위해 국내외 기업 간 전략적 제휴를 확대하고 있지만 국내 업체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업체와 정보통신기술업체들이 미래 모빌리티를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자체 투자도 필요하지만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도 추진해야 한다. 해외 경쟁업체들이 2017년 이후 5년이라는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합종연횡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관련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2026년부터 'SW 기반 전기동력 커넥티드 카'가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자동차 수요는 꾸준히 증가해서 2027년에는 1억대를 넘어서고, 커넥티드 카 보급은 2023년의 1억9200만대에서 3억6700만대로의 증가가 전망된다. 전기동력차가 신차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증하면서 내연기관차 비중은 계속해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데다 각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내연기관차 수요는 일시적으로 8000만대를 넘어서겠지만 2017년의 사상 최대치인 9600만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면서 2030년대 전반에 7000만대 아래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유럽자동차협회(ACEA)는 2030년 경자동차(밴을 제외한 승용차와 픽업트럭 및 경트럭) 판매에서 차지하는 전기동력차 비중이 유럽 70.7%, 중국 58.5%, 미국 44.8%로 전망했다.
이처럼 자동차산업에서의 경쟁 구도가 바뀌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창업기업 일부가 두각을 내보이고 있는 가운데 ICT기업도 미래 모빌리티사업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6년부터 자동차산업에서의 대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자동차산업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후 금융위기를 지렛대 삼아 제2의 도약기를 맞은 바 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국내 생산과 수출 물량이 감소하면서 어려움을 겪어 왔다. 다행히 완성차 수출이 2021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고, 국내 생산도 지난해 7년 만에 증가했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제3의 도약기를 맞기 위해서는 좌고우면할 것 없이 전기동력차 양산에 매진하면서 SDV 개발을 위한 네트워크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준비하는 자만이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듯이 국내 모빌리티업계의 분발이 요구되는 한 해가 시작됐다.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 hglee@katech.re.kr
〈필자〉이항구 조교수는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 근무하며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하고 있다. 친환경자동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 간 협업법 제정, 상생결제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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