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증거만으로는…" 제주 뒤흔든 미제사건들 잇따라 '무죄'

오미란 기자 2023. 1. 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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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피살·보육교사 피살·고유정 의붓아들 사망까지
변호사 피살사건 파기환송심 남아…檢 "공소유지 최선"
대법원 청사 전경.ⓒ News1 박세연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이 판결은 직접적인 증거 없이 간접증거 만으로 살인의 고의나 공동정범을 인정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12일 장기미제사건인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조직폭력배 출신 김모씨(57)에게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형사재판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해 범죄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거꾸로 말하면 검사의 증명이 그 만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하면 설령 유죄가 의심되는 사정이 있더라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주의 한 폭력범죄단체 '유탁파'의 행동대장급 인사였던 김씨는 24년 전인 1999년 8~9월 누군가로부터 현금 3000만원과 함께 '이모씨(당시 44세·검사 출신 변호사)를 손 좀 봐 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김씨는 2~3개월 간 동갑내기 조직원인 손모씨(2014년 사망)와 함께 범행을 공모했고, 끝내 손씨는 그 해 11월5일 새벽 제주시의 한 도로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를 세 차례 찔러 살해했다.

검찰은 재수사의 단초가 됐던 김씨의 자백 취지의 방송 제보 인터뷰, 범행 현장과 흉기 모양 등에 대한 김씨의 구체적인 진술 등에 비춰 살인죄의 공모공동정범이 성립된다고 봤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와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 담당 재판이 열리는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 News1 오미란 기자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김씨의 제보 진술과 나머지 증거 만으로 김씨의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방송사 PD를 협박한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김씨에게 징역 1년6개월만 선고했다.

그러나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는 원심 판결의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김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직접 증거는 없지만 여러 간접 증거를 종합할 때 범행 당시 김씨가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갖고 있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제2부는 이 같은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김씨의 제보 진술 중 주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는 데다 김씨의 제보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 없이 범죄사실을 추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또 다른 장기미제사건인 제주 보육교사 피살사건 재판 과정도 이와 유사했다.

이 사건 피고인인 박모씨(55)는 13년 전인 2009년 2월1일 새벽 자신의 택시에 탑승한 보육교사 C씨(당시 27세)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C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농업용 배수로에 시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동물 사체 실험을 통해 범행 시간이 특정된 점, C씨가 사망할 당시 입고 있었던 옷의 섬유조각이 박씨의 옷과 박씨의 택시 안에서 발견된 점 등을 근거로 박씨를 법정에 세웠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2019년 7월11일)와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2020년 7월8일), 대법원 제2부(2021년 10월28일) 모두 "피해자가 제3자의 차량이나 택시에 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동물 사체 실험의 경우 한 차례 뿐이어서 오류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 등으로 구속돼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됐던 고유정(36)이 지난 2019년 6월7일 제주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2019.6.7/뉴스1 ⓒ News1 DB

재수사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사건 재판도 마찬가지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2020년 11월5일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은 고유정(38)은 당시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와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 대법원 2부 모두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지만 검찰이 제시한 간접 증거만으로는 유죄의 증명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끈질긴 유전자(DNA) 수사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장기미제사건 피고인도 있다. 22년 전인 지난 2001년 여러 여성들을 강간했던 한모씨(57) 사례다.

이 사건은 지난 201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장기미제사건 관련 DNA를 전수조사하던 중 사건 당시 발견된 휴지 속 DNA와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한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미 지난 2009년 5월 강도강간죄 등으로 징역 18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던 한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4년(2021년 11월4일 확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검찰은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의 경우 아직 파기환송심이 남아 있는 만큼 한씨 사례처럼 끝까지 유죄 입증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제주지검은 이날 오후 입장자료를 내고 "대법원 판결문의 취지를 면밀히 분석해 향후 파기환송심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공소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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