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문자 받은 배우…병원 청소, 빌딩 청소 사이에 하는 일

한겨레 2023. 1. 1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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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내 곁에 산재
반지하 전세보증금 7천만원 피해
34살 연극배우의 꿈 꺾이지 않길
전세 사기 피해자 강시내(가명)씨가 2023년 1월4일 저녁 서울의 한 치과병원을 청소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연기 못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지방의 극단에서 연극하기 위해서는 고정 수입이 필요했다. 리조트에서 청소일을 했다. 연극하는 사람치고 마이너스통장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괜찮았다. 서울로 왔다. 연극 무대도, 일자리도 더 많을 것이었다. 서른네 살 연극배우 강시내(가명)의 서울 생활 시작이었다. 버거킹을 거쳐 맥도날드까지 6년을 일했다. 모두 야간 아르바이트였다. 야간엔 시급을 1.5배 주기도 하지만, 오디션 연락이 오거나 극단에서 부를지 모르니 낮은 자신을 위해, 꿈을 위해 남겨두는 시간으로 쓸 생각이었다.

아침 퇴근이 몸에 남긴 것

밤을 새우며 햄버거를 만들던 6년의 시간은 강시내의 몸을 서서히 망가뜨렸다. 가장 오래 일한 곳은 서울 강남에서도 가장 손님이 많은 맥도날드 매장이었다. 맥도날드 본사 임원들이 정기적으로 들러 점검하는 곳이기도 했다. 처음 1년은 잘 몰랐다. 젊으니까 건강하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잠자도 피곤하고 몸이 부었다. 생리도 불규칙해졌다.

야간근무를 시작하는 밤 10시는 피크타임이다. 새벽 2시까지 바쁘다. 아침 6시부터 다시 바빠진다. 직장 단체주문이 들어오고 7시가 넘으면 매장으로 사람들이 밀려온다. 손님이 적은 시간에는 낮에 들어온 부자재 정리와 냉장고, 냉동고 청소를 한다. ‘드라이브스루’도 가능한 매장이었다. 버거 주문이 들어오면 1분, 늦어도 1분30초 안에 만들어야 했다. 너깃을 튀겨야 하면 3분30초다.

일이 고돼 아침에 퇴근할 때는 손이 덜덜 떨렸다. 정형외과에 가서 손목 아대(보호대)를 처방받아 끼고 일했다. 근로계약도 4대보험 가입도 정석대로 해주는 곳이지만 산업재해 신청을 할 생각 같은 건 나지도 않았다. 근무 스케줄을 짜는 매니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야간근무를 풀타임으로 하는 게 중요했다. 손이 빠른 강시내에게 정직원 매니저로 일하자는 제안이 왔지만 맥도날드처럼 험하게 일하지 않아도 최저임금을 챙겨주는 곳이 많다는 걸 알았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던 2019년 가을,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문자에는 “MBC <피디수첩>에 전세 사기의 주범으로 나온 진○○이다. 방송 때문에 임대업이 마비되어 당신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쓰여 있었다. 진○○는 594채의 집을 가졌다고 하는 갭투자 임대업자다. 강시내의 전셋집은 그 594채 중 하나였다. 집은 반지하였다. 전세보증금 7천만원은 청년버팀목전세로 대출받은 돈이었다.

버거를 만드는데 눈물이 났다. 소식을 들은 강시내의 어머니도 주저앉았다. 고향에서 노래방을 하던 어머니는 아팠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했다. 국토교통부에 전화했다. 국회에 찾아갔다.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답뿐이었다.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당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모아오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카톡방을 열고 ‘○○카페에 앉아 있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접촉해서 사례를 모았다. 10건, 20건을 모았다. 국회에 가보자고 해서 모였는데 200건을 모아온 사람이 있었다. “무슨 논문처럼 모아왔더라고요.” 그러나 국회도 정부도 해결책을 찾아내진 않았다. 방송사에서만 자꾸 연락이 와서 물었다. “그냥 전세 사기 말고 다른 사례는 없나요? 비트코인하고 겹친 분이라든지.”

맥도날드 다음 청소일

사람들의 동정에 지쳐갔다.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도 지쳤다. 맥도날드에서 나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인터넷에서 청소일을 찾았다. 인력업체에서 강남의 한 빌딩 청소일을 받았다. 오전 7시30분부터 11시,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까지 쓰레기를 분리수거 해주고 화장실을 닦고 계단을 쓴다. 손이 빨라서 평이 좋게 났다. 인력업체에서 추천해주면서 한곳, 두곳 일이 늘어났다. 오후에는 병원 청소를 한다. 저녁 6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2시30분까지 병원 세 곳을 돈다. 한 병원에서 정직원으로 청소하던 어르신을 내보낸 자리에 자신이 일용직으로 들어간 걸 알았을 때 강시내는 머뭇거렸다. 미안해하는 강시내를 잘린 어르신이 다독였다. “괜찮아.”

청소할 때 쓰는 약품은 독하다. 병원 바닥은 더 잘 닦아야 한다. 병원은 평수가 넓다. 화장실도 약품과 락스를 섞어 쓰는데 독한 약품보다 락스를 좀 많이 쓰려고 한다. 계단 청소를 할 때는 무릎 아대를 한다. 무릎이 안 좋다. 한 달에 두세 번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다. 운동치료를 받으라는데 운동치료는 비싸다. 청소를 보낸 인력업체들은 시급에서 1천원, 2천원을 떼고 주는 것 같은데 정확히 얼마를 떼어가는지 모르겠다.

청소는 혼자 하는 노동이다. 사람이 있는 공간을 청소해도 그 공간 사용자들은 청소하는 이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투명하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는 것이 위안을 주기도 하는구나. 강시내의 마음이 안정된다. 오전 빌딩 청소와 오후 병원 청소 사이에 시간이 빈다. “혹시라도 작품이 들어오면 나갈 수 있게, 연극 연습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시간이에요.”

꿈 앞에 놓인 100만원

강시내를 만난 건 2022년 12월, 노동건강연대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하면서였다. 우리는 일하다 건강을 해친 50명의 청년여성에게 100만원의 지원금을 사용처를 제한하지 않고 지급했다. 100만원을 받은 강시내는 난감하다. 7천만원의 부채 앞에 100만원은 티가 안 난다. 야간노동으로 청소노동으로 이미 너무 많이 쓴 자신의 몸을 위해 돈을 사용할 수는 없을까. 자신에게 돈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게 권해주고 싶다. 그렇다면 노트와 펜을 사시라. 탐욕만 있으면 594채의 집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한 부동산 왕국에서 살아남는 데는 어쩌면 실패했겠지만, 그래도 하고 싶고 기다리는 것이 있지 않나. 연극을 위해 자신만의 극본을 쓰시라.

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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