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총회를 결여한 노사합의의 효력[LAW Inside]

2023. 1. 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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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이진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jinwoo.lee@bkl.co.kr
이 기사는 01월 11일 15:3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의 재정운영 실태를 거론하면서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재정 관련 서류의 비치의무와 함께 노동조합에게 반기에 한번 이상 회계감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14조, 25조, 27조) 그간 유명무실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실제 조치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겠다고 하고, 나아가 국회에서는 노동조합의 회계감사를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받도록 하고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에게 매년 의무적으로 감사자료를 행정관청에 보고할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로부터 거두는 조합비 외에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한데, 후자에 대해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긍이 되지만, 전자에 대해서는 마치 주식회사와 같이 일반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닌 노동조합의 내부 운영에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에 의하여 조합원을 비롯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규제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고, 이러한 권능은 일정 요건 하에서 그 법적유효성이 인정되는 유니언숍 조항(근로자 중에서 해당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거나 조합원이 아니게 된 자를 해고해야 한다는 단체협약), 민사·형사 면책, 부당노동행위구제제도를 통하여 법률상 상당히 강화되어 있다. 노동조합이 이처럼 강력한 권능을 부여받아 근로자의 경제적 이익에 다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체인만큼 그 내부운영에 관하여도 민주적 운영이 요구되고 그에 대하여 법적 규제를 할 수 있다는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노동조합 내부운영에 대한 법규제의 근거가 있다고 한다면 그 규제의 지향점은 역시 조합민주주의, 즉 개개 조합원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면서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공정하게 단체의 의사를 형성해 나가는 운영을 확보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있어서는 미묘한 역학관계가 엿보인다. 일전에 기고를 통해 영국에서는 쟁의행위가 적법하기 위한 요건, 특히 절차적 요건(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기 전에 사용자에게 사전통지, 찬반투표의 절차, 투표결과를 근로자 및 사용자에게 통지, 파업 전에 사용자에게 통지 등)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관계로, 불법쟁의행위에 해당될 위험이 높다는 점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같은 쟁의행위 투표 절차, 조합임원 선거 절차, 조합재정 규제, 파업불참자 등에 대한 조합 제재권의 제한 등 노동조합 내부운영에 관한 세밀하고 복잡한 규제는 1980~1990년대 보수당 정권 하에서 입법된 것들이다. 물론 경제·사회적인 다른 요인들도 있었겠지만 이와 같은 법제도적 요소 역시 영국에서 1980~1990년대 쟁의행위가 감소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되고 있다. 탈규제와 경제자유화를 외친 보수당 정권 하에서 이 분야 규제만큼은 강화되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노동조합 내부 재정이나 쟁의행위가 아닌 노사합의(단체협약)의 체결 국면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다수의 노동조합에서는 규약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조합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임원들이 조합총회를 거치지 않고 단체협약을 체결해 버렸다면 그러한 단체협약은 유효한가? 

1989년 노동부 지침에서는 '단체협약은 조합원 찬반투표의 결과에 관계없이 효력을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었음에도 당시 하급심 법원은 대체로 조합총회를 거치도록 한 규약이나 단체협약을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 1993년 쌍용중공업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수임자가 단체교섭의 결과에 따라 사용자와 단체협약의 내용을 합의한 후 다시 협약안의 가부에 관하여 조합원총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은 대표자 또는 수임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단체협약체결권한을 형해화하여 명목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91누12257). 이어 대법원은 2018년에도 KT사건에서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대표자의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체결 업무 수행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위하여 규약 등에서 내부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등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의 행사를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그것이 단체협약체결권한을 전면적ㆍ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닌 이상 허용된다'고 판결하면서(즉 조합총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면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는 취지), 조합총회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은 유효하고 다만 조합원이 조합장과 조합을 상대로 위자료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2016다205908).

노사합의(단체협약)의 체결이야말로 조합원들의 경제적 지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노동조합 권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국면에서 조합민주주의 대한 확보가 다소 약한 것 아닌가라는 느낌은 필자만 갖는 것일까. 미국에서도 가협약(tentative agreement)이 타결되면 해당 교섭단위 내의 전 근로자들이 이를 수락할지 아니면 더 유리한 제안을 할지에 관하여 투표를 실시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통례적으로 노동조합규약에서 단체협약의 체결을 위해서는 집행위원회나 조합원대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은 이를 결여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부정하고 있으며(동경고등재판소 2016.11.24.), 독일에서도 조합규약에서 명확히 정한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월권하여 체결된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보고 있다(연방노동법원 1990.7.24., 다만 연방노동법원은 사업장협정에 관하여는 근로자의 인준투표에 구속되지 않는 사업장위원회의 권한이라고 한다, 2020.7.28.).

언뜻 명료하게 보이는 '조합민주주의'는 상황에 따라 여러 수준에서 구현될 수 있고 상거래관계와는 다른 노사관계의 특성이 고려된다. 현장에서는 이 분야 현행 판례와 행정해석에 유의하여 운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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