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나라

권건호 2023. 1. 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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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규제와 기득권 지키기의 대명사처럼 꼽히는 '붉은 깃발법'.

영국에서 1865년 제정돼 약 30년 동안 시행됐는데 주 내용은 귀족들의 마차 사업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최고 속도를 시가지에서 3.2㎞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의료계와 약사회 반대로 법제화가 쉽지 않고, 법을 만들더라도 영역이 제한될 공산이 높았다.

지금처럼 할 수 있는 것만 명시해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과 새로 등장하는 서비스를 수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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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규제와 기득권 지키기의 대명사처럼 꼽히는 '붉은 깃발법'. 영국에서 1865년 제정돼 약 30년 동안 시행됐는데 주 내용은 귀족들의 마차 사업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최고 속도를 시가지에서 3.2㎞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또 자동차 운행 시 운전사, 기관원, 기수 3명이 반드시 있도록 했다. 기수는 마차를 타고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 앞 55m에서 선도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당시 영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그 결과 영국 자동차 산업은 세계 첫 시작임에도 경쟁력이 다른 나라에 뒤처졌다.

영국 원조의 붉은 깃발은 사라졌지만 현대판 붉은 깃발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휘날리고 있다. 붉은 깃발법이 등장한 1865년의 영국과 시공간이 다른 현재 한국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많은 사람이 심야택시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밤 10시를 전후해서는 택시를 호출해도 응답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혁신적인 모빌리티 서비스 도입을 금지한 이른바 '타다금지법'을 떠올렸다. 2020년에 통과된 타다금지법으로 '타다'나 '우버' 같은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는 택시난에 따른 소비자 불편, 택시요금 인상 등으로 이어졌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비대면 진료 도입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지 않았다. 의료계와 약사회 반대로 법제화가 쉽지 않고, 법을 만들더라도 영역이 제한될 공산이 높았다.

그러나 이용자는 비대면 진료를 원한다. 이는 수치로 드러난다. 2020년 2월 코로나19로 말미암아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무려 3500만건의 진료가 이뤄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률 상담 플랫폼, 공유숙박, 부동산중개 플랫폼 등 비슷한 논란이 벌어지는 분야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논란에는 변호사, 공인중개사, 숙박업소 운영자 등 기득권이 엮여 있다.

안타까운 것은 기술 혁신 역량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뛰어난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혁신기술 전시회 'CES 2023'에서 우리 벤처와 스타트업 111개사가 혁신상을 받았다. 그러나 혁신상 수상자 가운데 일부는 규제에 막혀 한국에서 서비스할 수가 없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혁신'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 기치대로 혁신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과 서비스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규제 해소 속도도 한층 올려야 한다. 붉은 깃발을 하나씩 없애는 것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대안은 네거티브 규제혁신이다. 금지행위만 규정하고 이를 제외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지금처럼 할 수 있는 것만 명시해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과 새로 등장하는 서비스를 수용할 수 없다.

전향적인 규제샌드박스 확대도 필요하다.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등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하거나 면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제품과 서비스 완성도를 높이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나 부작용을 발견해 보완할 수 있다.

지금처럼 붉은 깃발이 곳곳에서 휘날리는 나라에서는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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