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대신 지급" 정부 강제동원 해법 공식화… 피해자 측은 반발(종합)
"피해자 만족할 수준 아니지만… '창의적 접근' 필요"
(서울=뉴스1) 노민호 이창규 기자 = 외교부가 '제3자를 통한 변제'란 틀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에 관한 해법을 추진 중임을 공식화했다.
변제를 담당할 '제3자'는 그간 알려졌던 대로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될 전망이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12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 발제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으로) '제3자의 대위변제'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 등을 논의·검토했다"며 "핵심은 '법리 선택'보다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도 우선 판결금을 받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판결금'이란 우리 대법원이 지난 2018년 10·11월 일본제철과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 2곳에 각각 강제동원 피해자 1인당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을 말한다.
서 국장은 작년 7~9월 외교부 주관으로 가동된 민관협의회에서도 "당면 현안인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확정 판결 3건의 '판결금 지급을 우선 추진하자'는 데 의견이 수렴됐다"면서 "정부는 현재 계류 중인 소송도 원고가 승소하는 경우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서 국장은 특히 "원고(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3자'로부터 변제를 수령할 경우 지급 주체와 관련해선 현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바람직하다고 (협의회에서) 의견이 수렴됐다"며 △이 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새 재단·기금을 설립할 때 소요되는 절차·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외교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으로 이처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를 논의해온 사실을 공식 확인하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이른바 '중첩적 채무 인수' 방식을 통해 우리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발생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채무를 재단이 대신 변제해주는 것을 말한다. 재단은 이를 위해 최근 정관까지 개정한 상태다. 이 같은 방식이 확정·추진될 경우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배상금 재원은 한일 양국 기업 등 민간의 기부금으로 충당하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그간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 등의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우리 정부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며 우리 대법원의 관련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온 상황. 이 때문에 일본 기업들과 피해자 측의 협의도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배상금 변제'를 결정하더라도 일본 기업들이 배상금 재원 조성에 참여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 측에선 그동안 일본 기업들의 배상 참여 및 사과 등을 요구해왔다.
이와 관련 재단에서도 내부적으로 우선 포스코 등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국내 수혜 기업들로부터 거출한 자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국장은 또한 일본 측의 배상 참여·사과 등에 관해 "(한일) 양국 간 입장이 대립된 상황에서 피고 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판결금 지급을 이끌어내긴 사실상 어려운 점을 민관협의회 참석자를 비롯한 피해자 측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며 "이 부분에 대해선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그간 대일(對日) 협의를 통해 얻은 정부의 1차적인 감촉"이라고 전했다.
결국 우리 대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들 간의 채권 채무관계를 해소하는 방안을 먼저 내놓고 그에 대한 일본 측의 '호응'을 기대 또는 요구하는 게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큰 해법이란 게 외교부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서 국장은 "피고 기업 등의 사과 가능성과 별개로 확정 판결 피고 기업이 전체 강제징용 문제를 대표로 사과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한일 간엔 강제징용 외에도 많은 과거사 문제가 산재해 있다"며 "(정부는) 이런 점에서 일본이 이미 표명한 과거에 대한 '통철한 사죄·반성'을 성실히 유지·계승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주목한다"고도 말했다.
다만 서 국장은 "어떤 해법도 피해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님은 분명하다"며 "해법이 마련되더라도 과거사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이제 시작이다. 악순환이 계속되 한일관계에서 이 강제징용 현안을 계기로 선순환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유가족들에게 직접 (판결금) 수령 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은 이날 토론회 발제에서 소송 당사자 외의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등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일부 피해자 측 관계자들은 정부의 이 같은 구상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 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외교부와의 신뢰관계가 완전히 파탄 난 상황"이라며 "사후적으로 일본 측이 (배상금 재원 마련을 위한) 기금을 출연하겠다는 걸 합의문 없이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임 변호사는 정부가 검토해온 안(案)은 "본질을 벗어난 왜곡된 프레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 일부 피해자 지원단체 인사들은 일찌감치 토론회 불참을 선언하고, 이날 토론회 개최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국회의원 및 다른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상대로 '중첩적 채무 인수' 방식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폐기를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 진행 중에도 일부 피해자 측 참가자들이 고성을 지르며 정부가 검토해온 안(案)에 불만을 표시, 토론회가 급히 마무리됐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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