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식에 대한 갈망이 이끈 정보 혁명…신간 '뉴스의 탄생'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우리는 지금 미디어의 폭발을 목격하고 있다."
전통 신문이나 TV뿐 아니라 인터넷, 유튜브, 각종 소식지 등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하는 21세기 미디어 환경을 묘사하는 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장편소설 '로빈슨 크루소'(1719)를 쓴 대니얼 디포가 1712년 작성한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그 시절에도 새로운 소식에 대한 갈망은 유럽 어디에나 있었고, 디포도 이윤과 명성을 얻고자 뉴스 간행물 사업에 뛰어들려던 참이었다.
앤드루 페티그리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현대사 교수가 쓴 신간 '뉴스의 탄생'(원제: The Invention of News)은 1400년부터 1800년까지 유럽 뉴스 시장의 성장 과정을 조명한 역사서다. 책은 정치 엘리트들이 뉴스를 독점했던 중세시대부터 대중 정치에서 뉴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촘촘하게 그렸다.
15세기에 뉴스는 권력층만 향유했다. 웬만한 재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편 서비스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왕과 귀족들은 정치·외교·상업 분야에서 승기를 잡고자 새로운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초기에는 전령들의 입을 통해서 중요 소식을 전달했다. 양피지 가격이 비싼 데다가 정보가 샐 수 있어서였다.
상인들도 정보가 중요했다. 가격이 널뛰는 시장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서였다. 상인들은 정보의 가치를 정확히 이해했으며 잘못된 정보에 따라 행동했을 때 생길 위험성도 충분히 알았다. 이들은 뉴스의 주요 소비자이자 공급자이기도 했다.
돈과 권력이 있던 계층과는 달리 민초들은 입소문을 통해 사실을 들었다. 서민들은 술집·장터·선술집·여관 등에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많은 정보가 유통되다 보니 '옥석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오보가 빗발쳤다.
가령 영국과 스페인의 전쟁에서 유럽인들은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함선을 격파했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정확한 뉴스가 전달되기 전 이렇게 루머나 희망 사항이 먼저 유포돼 공황이 발생하거나 축하 행사를 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오보 속에서도 뉴스 간행물은 종교 개혁, 신대륙 발견,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 등 굵직한 사건들을 꾸준히 유럽 곳곳에 전했다. 인쇄술의 발달은 매체의 발전을 앞당겼다. 최초의 신문은 1605년 독일에서 생겼으며 이후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으로 퍼져나갔다.
17세기 초 신문은 사람들의 이목을 크게 끌지 못했다. 속보(速報)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보도는 서너 문장을 넘지 않았고, 아무런 논평이나 설명, 표제, 삽화도 없었다. 보도가 중요한 사안인지, 뉴스의 맥락은 어떤지 신문만 봐선 전혀 알 수 없었다.
반면 뉴스 팸플릿은 사건의 기승전결이 있었다. 대개 사건이 끝날 때쯤 발행됐기 때문이다. 요컨대 팸플릿을 보면 사건의 원인과 결과, 맥락과 스토리를 알 수 있었다. 신문은 팸플릿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최초 신문이 나오고 활성화되기까지 100여 년이 걸린 이유였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문해력이 향상되면서, 신문의 위상은 올라갔다. 1750년 무렵에는 수많은 유럽 시민들이 자기 집 거실에 앉아 주간지를 읽으며 머나먼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 등으로 공고했던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신문의 목소리는 더욱 강해졌고, 그에 따라 언론 자유를 향한 움직임은 한층 고조됐다. 언론인이자 프랑스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카미유 데물랭은 "오늘날 프랑스에서 검열집 서판을 들고 상원, 영사, 독재자를 사찰하는 사람은 저널리스트"라고 썼다.
신문은 이제 사람들 삶의 일부가 됐다. 뉴스는 일상의 경험을 넘어 세상을 엿볼 기회를 제공했다. 실제로 독자들은 평생 가보지 못한 나라를 엿보고, 본인이 참전하지 않은 전투 상황을 들여다보며 권력자와 군주를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복잡한 서사 없이, 예측할 수 없는 갖가지 사건 속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신문이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일단 등장한 이후 신문은 고상한 삶의 상징이자, 한 시민이 특정한 사회적 지위에 도달했다는 증표가 됐다. 저자는 "유럽 사회를 현대적인 통신 문화로 이끈 동력도 이런 정보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한다.
태학사. 박선진 옮김. 6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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