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깡통전세 위험 키우는 전세대출

오은선 기자 2023. 1. 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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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씨(33)는 지난해 초 관악구 봉천동 빌라로 이사했다. 전세자금의 90%는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심전세대출을 통해 3억원의 전세금 중 2억7000만원을 2%대 금리로 빌렸다. A씨는 최근 전세사기 피해 보도가 많이 나오면서 ‘혹시 우리 집도?’라는 생각에 불안해졌다고 한다. 그는 “공인중개업소를 통해 거래한데다 대출이 쉽게 나와 별 의심 없이 계약했는데, 혹시 문제가 생기면 신용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면서 “대출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최근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문제가 부각하면서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전세사기 대책은 보증보험 가입자의 경우 보증금 반환 절차를 최대한 당기고 미가입자는 긴급 금융지원 등을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심 전세앱을 출시해 임대인 납세정보 등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시장에서 전세사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전세금의 대부분을 대출에 의존하는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런 내용이 담기지 않아서다. 그동안 정부는 매매 시장에서 대출 규제를 통해 수요를 조절했다. 그러나 전세자금대출은 전세금의 80~90%까지 받을 수 있도록 풀어뒀다. 이는 곧 전세금 상승으로 이어져 갭투자를 활성화 시켰고, 집값 거품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금의 문제는 거품이 꺼지면서 터진 것이다.

예를 들어 전세가격이 3억원일 경우 금융권에서 80%인 2억4000만원, 많게는 90%인 2억7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나머지 20%인 3000만~6000만원의 자기자본으로 전셋집에 들어갈 수 있다. 심지어 저금리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마이너스 통장, 신용대출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 보니 2030 세대도 많이 이용했다. 결과적으로 상당수 임차인이 전세금의 대부분을 대출로 조달한 셈이다.

대출금을 조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주택금융공사(HF),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서 전세보증금의 80~90%가량을 보증해 주면 은행은 리스크 없이 대출을 승인했다. 그만큼 전세 가격은 쉽게 오를 수 있는 구조가 됐고, 깡통전세라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2021년 12월 금융회사가 공적 보증에 과잉 의존하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전세보증 축소하겠다는 입장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1년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최근 금융당국은 주택금융공사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10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증 비율이 높을수록 은행은 가산금리를 더 낮게 책정하기 때문에 당장 금리 부담을 덜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리스크는 더 커지는 셈이다.

전세에 거품이 끼는 것을 막는데는 전세보증을 축소하고 대출 비중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필요한 조처다. 하지만 시장 상황 때문에 당장 하기 어렵다면 주택가격에 대한 감정이라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 기관이 시세를 제대로 몰라 보증금액이 커진 문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HUG는 최근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전세보증 상품에 가입할 때 필요한 감정평가를 일부 선정된 법인에서만 받도록 제한했다. 감정평가사가 집주인 등과 결탁해 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늦었지만 필요한 조처인데, 수시로 교차 검증을 하는 등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은행의 역할도 중요하다. 해당 주택의 땅값과 건축비 등을 감안한 적정 가격이 어느 정도인 지를 제대로 알아야 전세대출을 무리가 없는 선에서 실행할 수 있고, 실제로 전세계약이 비싸게 체결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은행들은 서류상 감정 등을 통해 전세대출을 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까지 믿을만한 감정평가사에게 평가를 맡긴다면 위험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전세는 그동안 ‘내집 마련’의 중간 단계로 여겨졌다. 전세 주택에 거주하며 내집 마련 자금을 모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불안한 주거 형태라는 취급을 받는 상황이 됐다. 서민 주거 안정을 이루려면 거품을 제거하고 판치는 전세사기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이 극심한 만큼 정부와 기관, 은행이 촘촘한 제도로 문제 소지를 줄이는 것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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