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이길 포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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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예술이고, 상품은 장사야." 작품은 보통 천재가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품의 세계는 다른 문법이 통용된다.
이 세계는 천재임을 포기할 때 비로소 상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이번 인터뷰는 천재(가 되고 싶은) 영화감독을 포기하고 장사의 세계로 뛰어든 내 친구 수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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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예술이고, 상품은 장사야.” 작품은 보통 천재가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우아하고 고귀한 세계다. 하지만 상품의 세계는 다른 문법이 통용된다. 이 세계는 천재임을 포기할 때 비로소 상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이번 인터뷰는 천재(가 되고 싶은) 영화감독을 포기하고 장사의 세계로 뛰어든 내 친구 수미의 이야기다.
수미를 처음 만난 건 자본주의 한복판이었다. 영화라는 가장 고전적인 매체에서 활동하던 그는 NFT(대체불가능토큰) 파도에 어떻게 올라탈지 작당모의를 하고 있었다. 그 하나로 요즘 수미는 긴 호흡의 영화를 쉬고 <소감독>이란 유튜브 채널에서 1분 이내의 쇼츠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소감독> 채널은 상품을 팔고 있잖아. 이제는 천재이기를 포기한 거야?
“난 아직 거장이 아니니까 먹고사는 고민을 하지. 첫 영화 출품 뒤 마이너스통장만 생겼거든. 주변을 둘러보니 젊은 영화감독들 다 배고파서 꼬르륵거리고 있더라. 그러다 NFT를 통한 새로운 저작권 시스템에 관심 갖게 됐고 이 생태계를 알리는 중이야. 지금은 작품 활동을 안 하지만, 이 또한 나름 분노를 표현하는 행위예술이라 생각해.”
예전엔 작품 하는 천재가 되고 싶었던 거야?
“천재가 꼭 대단한 사람은 아니야. 내면의 상상을 꼭 표현해야만 하는 사람들이지. 박찬욱 감독 보면 인터뷰에선 세상 젠틀하잖아. 그런데 영화에서는 잔인하게 복수하는 장면을 그리고 말이야. 보통 사람은 상상하지 않는 것을 아주 디테일하고 집요하게 표현해내는 사람이 결국 천재라고 생각해. 그게 아니면 상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거든.”
영화감독 말고 유튜버의 생활은 어때?
“그동안 영화라는 포맷에 너무 갇혀 있단 생각을 했어. 요즘은 오히려 대중과 벽을 허무는 사람들을 동경해. (모티비)나 <드로우앤드류>(모두 유튜브 채널)를 보면 딱 그래. 구독자를 위해 친근한 질문을 던져주잖아. 혼자 헤쳐나가기 힘든 세상에 랜선 동료랄까. 그래서 나도 동료처럼 친근해지려고. NFT에 대해 어려운 개념을 1분 안에 설명하는 쇼츠를 만들어가고 있어.”
수미는 나중에 어떤 천재가 되고 싶어?
“나는 관계에 대한 표현 욕구가 제일 크거든. 관계에서 오는 충족감 또는 결핍감에서 비롯된 갈망을 작품화하고 싶어. 모두가 데뷔 영화로 자극적인 시놉시스를 쓸 때 관계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담고 싶었어. 그래서 만든 작품이 <화미서점>이야. 이 주제에 대해서 잘 익어가다보면 언젠가 잘 숙성한 과실주가 돼 있을 거라 믿어. 이창동 감독처럼 젊은 시절 국어교사로 일하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르익었을 때 천천히 영화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작품을 만들다가 상품을 만들고 있는 수미. 그는 NFT 세계를 더 잘 흡수하기 위해 ‘논스’라는 커뮤니티에서 함께 살며 따뜻한 시선의 브이로그도 제작한다. 극내향형인 그가 복작복작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뛰어들다니. 그만큼 ‘관계’라는 주제에 대한 수미의 진심과 아직 발현되지 않은 천재성을 볼 수 있다.
작품보다는 상품이 넘쳐나는 유튜브라는 공간. 종종 시장 한복판처럼 혼란스럽기도 한 이곳. 그래도 전직 그리고 미래의 영화감독이 고른 플레이리스트라면 반짝이는 채널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김수진 컬처디렉터
김수미(인스타그램 @o___sophie)의 플레이리스트
❶ <큐피커>(Qpicker) ‘결혼식이 이별식이 된 사연, 그리고 22년 뒤 찾아온 전남친’
https://www.youtube.com/shorts/WeEqzi_TJls
“어려운 동서양의 문화예술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1분 안에 설명해주는 채널. 콘텐츠 제작자로서 어떤 기승전결의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지 배우고 있어요.”
❷<대니 카살>(Danny Casale) ‘슬퍼하지 마’
https://www.youtube.com/watch?v=PppkNH3bKV4
“일상적인 오브제를 사용해 사랑스러운 노래 혹은 상황극을 전달해요. 귀엽고 하찮은 모션그래픽으로 멍하니 보며 위로받는 중.”
❸ <드로우앤드류> ‘빚 10억에서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지 않고 사업가로 성공한 방법https://www.youtube.com/watch?v=e64rbIbV_fI“<모티비>(MoTV)와 함께 같은 세대 디자이너와 브랜더들에게 랜선 동료 같은 존재. 혼자서 헤쳐나가기 힘든 이 세상에 친근한 질문을 던져주고 함께 고민을 풀어가는 소중한 존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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