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뒤숭숭한 흥국생명…배구단發 이미지 급실추
여자프로배구단 감독 경질 논란에 트럭 시위까지
흥국생명 신뢰도 하락 우려 제기
[더팩트│황원영 기자]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로 채권시장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던 흥국생명이 이번에는 자사 여자프로배구단 감독 경질 사태로 뭇매를 맞고 있다. 같은 배구단에서 학교폭력(학폭) 논란이 불거진 지 2년 만에 또 잡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거듭된 배구단 내홍에 흥국생명 스포츠팬뿐 아니라 보험 소비자 사이에서 신뢰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기업 이미지 재고와 마케팅을 위해 운영하는 스포츠단이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2일 흥국생명이 권순찬 전 감독과 김여일 전 단장의 경질을 공식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시즌 6위에 머물던 흥국생명은 올 시즌 예상을 깨고 정규리그 2위에 오르며 선전을 펼쳤다. 권 전 감독은 이와 같은 성과의 주역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지난해 마지막 경기에서는 우승 후보인 현대건설을 격파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감독 경질 사태가 벌어지자 황당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흥국생명은 권 감독과 구단간에 서로 추구하는 방향성이 맞지 않아서 결별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 감독이 선수단 운영에서 윗선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고 폭로하며 사태가 일파만파 커졌다.
선수단과 배구팬들도 반기를 들었다. 흥국생명 간판스타인 배구 여제 김연경 선수는 5일 회사가 말 잘 듣는 감독을 선호한다며 소속팀에 쓴소리를 뱉었다. 일부 팬들은 지난 6일부터 모기업 태광그룹 장충 본사를 시작으로 흥국생명 광화문 본사 등에서 트럭시위를 벌였다.
흥국생명은 지난 5일 신용준 신임 단장을 내세워 논란 진화에 나섰다. 신 단장은 권 전 감독과 김 전 단장의 갈등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으며 회사 차원의 문제와 거리를 뒀다. 또한 감독 권한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발언으로 논란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명은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켰다. 소속 선수들은 김 전 단장이 선수 기용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모기업 수뇌부에서 문자를 보내 특정 선수 기용에 관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 전 감독이 모기업의 지시를 따르지 않자 지휘봉을 빼앗았다는 설명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흥국생명은 지난 6일 김기중 전 성명여고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김 감독은 8일부터 선수단을 이끌 예정이었으나 배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틀 뒤인 10일에는 김 감독이 결국 감독직을 고사했다.
권 전 감독 사퇴 이후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던 이영수 감독대행이 한 경기만에 사퇴한 것까지 고려하면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세 명에 이르는 감독(대행 포함)이 흥국생명에서 손을 뗀 셈이다.
이에 전일 치러진 현대건설전에서 김대경 코치가 대신 감독직을 수행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흥국생명은 결국 패전을 면치 못했다.
흥국생명은 논란이 커지자 지난 10일 사과문을 통해 "팬들께 심려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도 머리 숙여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며 "배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경기 운영 개입이라는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된 결과로써 결코 용납될 수도 없고, 되풀이되어서도 안 될 일이 분명하다. 앞으로 경기 운영에 대한 구단의 개입을 철저히 봉쇄하고 감독의 고유 권한을 전적으로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흥국생명에 대한 신뢰도에는 흠집이 난 상황이다. 흥국생명은 감독 교체가 잦고 임기가 짧기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도 고 황현주 감독을 지금의 권 전 감독과 비슷한 사유로 두 번이나 경질했다.
통상 기업들은 기업 브랜드 마케팅 효과와 사회공헌 등 이미지 제고를 위해 스포츠 구단을 운영한다. 선수 영입과 운용 등에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수익 창출을 주목적으로 두지 않아 마이너스를 감수하면서까지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미숙한 운영으로 흥국생명 브랜드 이미지 제고는커녕 오히려 논란거리라는 인식만 가져다 줬다. 특히 생명보험사(생보사)는 종신·변액보험 등을 주력으로 판매하기에 기업 경영에서 신뢰도가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로 꼽힌다. 생보사가 평판 관리에 특히 신경을 쓰는 이유다.
앞서 흥국생명 배구단은 학폭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 2021년 당시 흥국생명 소속이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창 시절 학폭을 행사한 가해자라는 폭로가 나오면서다. 두 선수의 학폭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흥국생명의 미흡한 사후 대처로 불매운동까지 번지는 등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흥국생명은 당초 두 선수 징계에 대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가해자인 두 선수의 회복을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선수 보호라는 명목하에 학폭을 용인하는 2차 가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성난 반응이 이어졌다. 흥국생명은 논란이 확산되자 15일 뒤늦게 이들 선수에게 무기한 출전정지를 결정했다.
이 같은 거듭된 논란으로 소비자가 등을 돌릴 경우 타격도 클 전망이다. 흥국생명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액 1조7137억 원, 영업이익 782억 원, 당기순이익 594억 원을 기록했다. 전 분기 대비 매출액은 35.1% 늘었지만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각각 12.7%, 19.1% 줄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콜옵션 미행사로 한차례 신뢰도가 하락했다. 흥국생명은 지난해 11월 초 5억달러(발행 당시 환율 기준 5571억 원)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조기 상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급격한 금리상승으로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따른 금리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례적인 콜옵션 미행사에 채권시장이 출렁였다. 은행 외화차입 여건이 악화되고 국정감사까지 오르자 흥국생명은 6일 만에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번복했다.
자금 마련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오너일가의 회사 지원이라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에 대한 지원 철회를 밝히고, 흥국화재 지분 인수로 우회 지원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은 소비자의 신뢰가 중요한 업종인 만큼 평판 관리에 특히 신경을 쓴다"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자 하는 스포츠 마케팅이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 제고나 매출 확장 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스포츠를 통한 성공담이 브랜드 이미지에 투영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사태는 오히려 기업에 흠집을 내는 상황"이라며 "흥국생명과 모기업 본사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등 소비자 뇌리에 부정적 경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아직 소비자의 불매운동 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일반 제조 유통업과 달리 보험상품의 특성상 불매운동으로 인한 보험상품 해지는 소비자의 손해가 클 수 있다"며 "배구단이 해당 사태를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won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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