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유령', 절도있게 아름다운 항일 스파이 영화의 탄생

강효진 기자 2023. 1. 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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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 제공ㅣCJ ENM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매혹적인 캐릭터 플레이와 감각적인 미장센이 돋보이는 영화 '유령'이 강렬한 연기와 밀도 높은 케미스트리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유령'(감독 이해영)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영화다.

이해영 감독이 강조했듯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선명한 캐릭터다.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에 걸맞은 또렷한 캐릭터들이 각각의 존재감을 뿜어낸다. '유령을 찾아라' 보기들 중 매력적인 오답을 숨겨두는 장난기도 발휘했다.

외딴 호텔이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인 만큼 '인물'이 가장 도드라진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탈을 쓰고 그에 걸맞은 진한 농도의 감정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펼치는 배우들의 모습만으로도 볼거리의 절반 이상을 해낸다. 주연 배우들은 각각 매혹적인 서사, 반전 캐릭터, 섹시한 카리스마, 강렬한 화면 장악력, 참을 수 없는 귀여움까지. 분량 관계 없이 모두가 한 가지 씩은 이 작품을 통해 칭찬 받을만한 선물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분위기다.

더불어 작품 전면에 드러나있지는 않지만, 이번 작품은 보기 드문 강렬한 여성 서사를 품고 있다. 박차경 역의 이하늬와 유리코 역의 박소담 뿐만 아니라 우정출연으로 활약한 윤난영 역의 이솜까지, 빠짐없이 눈길을 끈다. 강렬했던 연기와 함께 상대 배우들과 남다른 케미스트리로 상영 이후 매혹적인 신스틸러로 꾸준히 회자될 것으로 기대된다.

캐릭터와 함께 드러나는 두 번째 장점은 미장센이다. 캐릭터들의 비주얼, 각이 잡힌 말끔한 의상, 호텔의 고풍스러운 미술, 클래식하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소품들까지 영화를 구성하는 각각의 퍼즐 조각이 모두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의상과 배경 구석까지 조화를 이루며 톤다운된 색감들이 고전미를 담고 있다. 작위적일 만큼 반듯하고 깔끔하고 아름답게 배치된 영화 속 요소들이 쾌감을 준다. 거울과 문을 이용한 절묘한 시점 전환까지 공을 들인 흔적이 가득하다. 보는 맛이 출중한 그림같은 영화다.

특히 서현우가 맡은 천계장 등 등장인물들이 넥타이를 매만지거나, 암호문을 해독하거나, 나이프를 쓰는 군더더기 없이 손 동작 하나까지 결벽적으로 정제한 신들이 종종 눈에 띈다. 동작의 합이 철저하게 계산된 한 편의 연극 같기도, 보드게임 '클루'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오묘한 매력이 이 작품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더한다.

이렇게 인상적인 캐릭터와 미장센을 주무기로 내세운 가운데, 서사 구조는 예상 밖의 전개다. 포스터와 소재만 보면 '누가 유령일까'를 목표로 하는 심리전, 추리물을 상상하기 쉽지만 그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다. 유령의 정체를 극 시작부터 드러내고 유령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구성이다.

다만 유령, 그리고 또 다른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각각 이야기로 뻗어나가는데 집중하기에 중심 서사가 힘있게 끌고간다는 인상은 아니다. 때문에 전반부가 다소 정돈되지 않은 채 흘러간다고 느껴질 수 있고, 중반에는 다소 늘어진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주요 캐릭터들의 정체가 거의 다 밝혀지고, 인물들이 호텔을 벗어나면서부터는 2막이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미심쩍은 캐릭터가 '유령이냐 아니냐'가 끝까지 이어진다. 이후엔 유령 대 일본군의 전면전이 펼쳐진다. 긴장감 넘치는 총기 액션이 펼쳐지면서 엔딩까지 스릴 넘치게 달려나간다.

캐릭터들을 풀어내느라 어수선하게 초점이 잡히지 않았던 분위기도, 후반부터는 얽히고설킨 인물들이 농도 짙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꼼꼼히 씹고 뜯고 맛보고 싶은 '관계성 맛집'으로 탈바꿈 한다.

엔딩 전방에서는 과감한 포기의 미학으로 전형성을 벗어났다. '사망 플래그'(인물의 죽음을 암시하는 클리셰)에 사람을 죽이는 뻔한 선택을 하지 않았고, 배우의 유명세와 관계 없이 가야할 때를 맞춰 깔끔하게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군더더기 없는 선택들이 이 영화의 전반적인 인상을 세련된 것으로 만들어준다.

큰 덩어리로 두차례 가량 등장하는 박차경과 쥰지의 액션 신도 그냥 지나가면 섭섭한 포인트다. 맨손으로 무자비하게 서로를 후려패는 장면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건장한 군인 남성과 보통의 여성이 체격 조건에서 크게 차이나는데도, 이들의 싸움에서는 힘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그저 액션신'으로 보인다. 힘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춘 놀라운 장면이다.

이렇듯 조각마다 세심하게 공들인 흥미로운 퍼즐을 준비한 '유령'이 종잡을 수 없는 다채로운 취향으로 무장한 까다로운 관객들의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는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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