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강제동원' 일본 기업 참여 없는 배상 고려한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배상 판결의 이행을 두고 윤석열 정부는 피고인 일본 기업의 참여는 어려우며, 대신 현존하는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으로 제3자의 기금을 모아 변제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1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외교부와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국민의힘 정진석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판결금 지급 방안으로 (원고들이 재판 이후 보유하게 된) '법정채권'에 대한 제3자의 변제가 가능하다는 법리가 있다"고 말했다.
서 국장이 언급한 제3자 변제는 피고인 일본 기업과 함께 1965년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이득을 본 한국 및 일본 기업이 채무를 같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피고 일본 기업 외에 다른 기업들이 재단에 기부금을 내고 재단이 채무자가 되어 법적 배상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병존적 채무인수'를 의미한다.
서 국장은 이같은 방안을 채택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확정 판결 피해자 중 일부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 내 경제활동 및 자산을 철수해 '압류할 자산'이 부재하여 강제집행을 아직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결정된 배상금을 한국 내 일본 자산을 압류하여 지급하는 이른바 '현금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7월부터 진행된) 민관협의회에서는 민사사건으로서 채권-채무 이행의 관점에서 (피해자들의 배상금이) '법정채권'인 만큼 피고인 일본기업 대신 제3자가 변제 가능 논의, 즉 '우리 피해자들이 판결금을 제3자로부터 수령 가능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서 국장은 "구체 법리로서 '제3자 대위변제', '중첩적 채무인수' 방안 등을 논의했고 검토 결과 핵심은 '법리 선택' 보다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도 우선 판결금을 받으셔도 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원고인 피해자 및 유가족분들게 직접 수령 의사를 묻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 국장은 "(배상금의) 재원에 대해서는 민관협의회 뿐 아니라 피해자 측에서도 외교부와의 면담 및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기여가 중요하다고 말씀했다"라면서도 일본 기여에 피고 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한일) 양국 간 입장이 대립된 상황에서 피고기업의 판결금 지급을 이끌어내기는 사실상 어려운 점을 민관협의회 참석자들을 비롯해 피해자 측에서도 인지하고 계신 것으로 파악한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서 국장과 함께 발제자로 참석한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은 연말과 연초 피해자 유족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와 자문위원회 위원들을 만나 재단이 재판 승소 피해자 15명 문제에 관여하는 기관이 될 수 있고 그럴 경우 우선 청구권자금 수혜기업의 기부금을 받아서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심 이사장은 이와 함께 포스코가 내도록 되어 있는 40억 원을 쓰게 될 경우에는 다른 청구권자금 수혜기업에서 최소한 40억 원 이상의 기부를 받아 이 돈은 유족들만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개인별로 의사를 확인한 결과, 38명 중 36명이 지지해주셨다. 반대하는 2분 중 한 분은 포스코 자금을 쓰는 것에 대해, 다른 한분은 15명에게만 먼저 보상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며 "재단은 내일 오전 특별위원회와 자문위원회 연석회의를 열어 위원들이 한꺼번에 모인 자리에서 연말 연초에 개별적으로 설명드렸던 내용을 다시 설명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병존적 채무인수, 본질 호도하는 잘못된 프레임
정부의 안에 대해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당시 피해자 측의 대리인을 했던 법무법인 해마루 임재성 변호사는 "'대위변제안', '병존적 채무인수안'은 모두 본질을 호도하는 잘못된 프레임"이라며 "일본 기업이 판결이행을 하지 않는 다른 모든 방식이 대위변제일뿐이고, 병존적 채무인수는 절차에서 사용되는 법 기술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임 변호사는 서민정 국장 및 심규선 이사장의 발제를 통해 정부의 안은 "① 포스코 등 한국기업 재원으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키고, 이 절차를 한국이 먼저 시작하면서 피고 기업을 제외한 일본 기업의 기부를 기대함(기부하도록 노력함), ② 일본 측 사과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사실인정이나 피해자들에 대한 유감표시가 아닌, 과거 일본 측 담화를 확인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민법 제469조 제1항에 따른 제3자 변제는 불가능하다.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는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한데, 이미 (피해자이자 소송 원고 당사자인) 양금덕 선생님 등이 피고 기업 이외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며 우선 대위변제가 법리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 변호사는 병존적 채무인수와 관련 "결국 재단이 일본 기업과 병존적 채무인수 계약을 체결해서 일본 기업 대신 변제시도를 하는 방식이 유일한 방안이나 이 역시 '채권자 동의 없이 채권소멸 가능한지’에 대해 해석이 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단은 위와 같이 채무인수를 한 후 피해자가 거부하면 공탁을 할 것이고, 공탁서를 집행법원에 제출할 것"이라며 "이후 피해자 측은 일본기업과 재단이 체결한 채무인수 계약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일본 기업이 채무인수 계약서를 쓴다는 것은 본인이 채무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데 지금 일본 기업은 이 판결이 무효이고, 본인들은 따를 의무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이 계약서가 민법 제107조의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서 무효가 의심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결국 이 무효 의심을 다투는 과정에서 채무자인 일본 기업이 한국 법원에 자신의 진의가 무엇인지 입장을 밝혀야 하고, 공방이 계속될 것이며, 무효로 판단될 경우 한국 정부가 피해자 동의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이 안은 파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변호사는 "또한 피해자 측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 측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부안을 강행할 경우, 피고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추가 압류 및 집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최우균 변호사는 "제3자 변제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례는 없는데 이 건의 경우 대법원 판결에 의해 원고가 채권을 얻게 된 '법정채권'이기 때문에 사적자치 원칙의 적용여지가 없다"며 채권자가 제3자의 변제를 원하지 않아도 변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최 변호사는 중첩적 채무인수에 대해서도 "확립된 판례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중첩적 채무인수 판례를 보면 채무를 인수하는 경우 중첩적인지 면책적인지 당사자 의사표시 갈리는 경우 중첩적으로 본다면서 채권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 지원 활동을 벌여온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은 단순한 민사 소송이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을 되돌리기 위한 소송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라며 "정부에서 발표한 안은 이분들의 사죄와 배상, 잘못한 기업이 사죄하고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에 맞냐는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의식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이 소송은 소송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포괄적인 피해보상도 열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에서는 한국이 먼저 피해자에 대해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일본의 책임을 완벽하게 면책해주는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일본 기업 자산 압류하고 이 금액을 재단이 배상하는 방안 제안 나와
이날 토론회 참석한 이원덕 국민대학교 교수는 "병존적 채무인수를 해도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고 일본 피고 기업이 참여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재판이 되는 거고 사상누각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되면 현금화 진행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일본 기업이 손실을 보게 되면 재단이 사후 보전조치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는 국내적 사법절차는 절차대로 이행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국제법적으로 조치를 이행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기업의 자산이 현금화될 경우 일본이 여러 보복조치 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본이 이 건과 관련해서 보복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며 "정부는 그에 따른 예방외교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재단의 기금 조성이 문제인데 300억 원 전후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 외에도 청구권 수혜 기업이 있는데 이들로부터 기부를 요구해야 한다. 재단의 노력과 정부, 국민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피고 기업의 참여가 필수이고 해당기업이 들어오는 것이 가장 좋은데 관련 기업이나 한일 개인 성금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는 방법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급 대상은 우선 대법원 승소피해자 15명에 대한 즉시 지급이 바람직하다"라며 "법원 계류돼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1000여 명이 있는데 승소 피해자에 한해 지급하는 것으로 하고 중장기적으로 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 혹은 국가폭력피해자로 지정하여 보훈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박홍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학자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이야기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일본이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니 피해자들이 병존적 채무인수 안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말해 청중들의 강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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