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바게트, 프랑스를 읽는 문화 코드

조성관 작가 2023. 1. 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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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바게트 트라디시옹 / 사진제공=정연아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나는 30대 초반까지 콜라를 마실 줄 몰랐다. 입 안을 쏴 하게 만드는 탄산에 적응하지 못해서였다.(콜라를 처음 먹어보는 어린이들은 콜라가 맵다고 한다.) 내가 콜라 맛을 처음 느낀 것은 캐나다 토론토에 파견 나가 있을 때였다. 아파트 앞의 피자가게에 가서 피자와 곁들여 콜라를 시켜 먹었는데, 콜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 이 맛에 콜라를 마시는구나.

내가 콜라 맛을 몰랐던 것은 순전히 환경 탓이다. 내 고향 청양은 충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칠갑산이 있는 산골이다. 어린 시절 나는 콜라를 먹어보지 못했다. 중학교 때 소풍 간 흑백 사진을 보면 교복을 입은 채 미린다(Mirinda) 병을 들고 있는 게 보인다. 청양에서는 탄산음료를 미린다와 환타만 팔았다. 나는 콜라 특유의 삽상한 맛을 기억하지 못한 채 소년기를 보냈고, 그게 청년기까지 연장되었다.

콜라처럼 그 맛을 오랜 시간 알지 못한 게 바게트 빵이다. 읍내의 빵집에는 단팥빵과 소보로빵 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 가방에 단팥빵 두 개, 미린다 한 병, 삶은 달걀 몇 개를 넣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열아홉 살 때까지 빵 안에 팥소가 들어간 빵이 전부인 줄 알았다. 농촌에서 대처로 유학을 올 때까지 그랬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광화문 한복판의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줄곧 단팥빵만을 먹었다. 물론 가끔 레스토랑에서 식전 빵으로 나오는 바게트를 먹긴 했지만. 여전히 빵 속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밍밍한 빵을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맛없는 빵을 왜 저렇게 좋아하지.

바게트를 들고 뛰어가는 어린이 / 사진=위키피디아

바게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사진

내가 바게트에 대해 본격적인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전설적인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사진으로 아는데.(이건 확실치는 않다) 대여섯 살로 되어 보이는 소년이 왼팔 겨드랑이에 자기 키만 한 바게트를 낀 채 달려가는 모습이다. 해맑게 환하게 웃는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소년의 표정과 걸음에는 두 가지가 함축되어 있었다. 하나는 부모님이 집에서 갓 구워진 빵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소년은 바게트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뜻이다. 그러다 따끈따끈한 바게트를 하나 샀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을까. 도대체 바게트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물음표가 각인되었다.

바게트는 프랑스 문화 코드다. 프랑스의 자부심이다. 프랑스 정부는 바게트 모양을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길이는 약 65㎝, 지름은 5~6㎝. 무게는 250g 내외. 값은 1300원 정도. 특정한 빵을 국가에서 법령으로 규정하는 나라가 세계에서 프랑스 말고 또 있을까.

프랑스 사람들이 나무토막처럼 생긴 빵을 먹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들어서다. 19세기 한 제빵사가 헝가리산 밀가루, 그뤼오(gruau)를 사용해 길쭉한 빵을 만들어 팔았다. 이 길쭉한 빵이 맛에서 혁신적인 도약을 한다. 183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발된 '스팀 오븐 빵 굽는 기계'가 파리에 들어왔고,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효모'를 빵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무렵 프랑스인은 생김새가 특이한 이 빵을 '바게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바게트는 프랑스어로 지팡이, 막대기, 바톤이라는 뜻이다. 1920년 파리시는 바게트에 대한 규정까지 만들었다.

메이외르 바게트 인증 마크 / 사진제공 =정연아

1944년의 '바게트 그랑프리' 대회

바게트가 프랑스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것은 1944년 '바게트 그랑프리' 대회를 개최하면서부터. 최고의 바게트 제빵사를 찾는 대회. 매년 200명 이상의 제빵사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바게트 경연을 펼친다. 심사위원들은 굽기, 모양, 냄새, 맛, 부스러기 5가지 기준으로 우승자를 가린다. 우승자는 4000프랑의 상금과 함께 1년간 엘리제궁의 식탁에 빵을 공급하는 권한을 갖는다.

프랑스인의 바게트에 대한 자긍심은 그들이 '제빵 조약'까지 만들어냈다는 사실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1993년 프랑스 국회는 홈메이드라는 이름으로 빵을 만들어 팔려면 판매하는 장소에서 빵을 구워야 한다고 제빵 조약에 규정했다.

프랑스 빵집에서는 여러 종류의 바게트를 판다. 바게트 데피, 프류뜨, 피셀, 바케트 트라디시옹, 드미 바게트. 바게트 트라디시옹(baguette tradition)은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한 전통 수공 바게트를 말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보통 그냥 "트라디시옹"이라고 말한다. 절반 길이의 바게트가 드미(demie) 바게트다.

파리시는 매년 최고의 바게트 빵집을 선정해 '올해의 바게트'를 발표한다. 언론은 이 연례행사를 크게 다룬다. '메이외르 바게트'(meilleure baguette)다. 영어로 하면 the best baguette다. 올해의 바게트로 선정되면 미슐랭 스타처럼 빵집 유리 창문에 인증 마크를 붙인다. 제빵사 최고의 영예다.

지난해 29회 '올해의 바게트' 수상자는 제빵사 다미엥 데덩이었다. 데덩은 15구 캉브론가 88번지에서 블랑제리 '프레드릭 코뮝'을 운영하는 제빵사.

2018년 프랑스 정부는 바케트를 만드는 장인정신과 문화를 '국가무형문화재' 목록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말 유네스코(UNESCO)는 바게트 제조법과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재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프랑스 문화부장관 출신의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런 등재 이유를 밝혔다.

"바게트는 프랑스인의 일상적인 의식이자 식사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이며, 나눔과 즐거움의 동의어다. 프랑스인의 생활방식을 세계인이 함께 지켜나가게 됐다."

바게트 / 사진=위키피디아

내가 바게트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하게 된 것은 바게트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에 등재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다.

바게트는 무엇으로 먹는가. 바게트는 단단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로 나뉜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껍질은 처음에는 저항하는 것 같다. 조금만 힘을 주면 입안에서 '바사삭' 부서진다. 순간, 청각과 촉각이 변연계를 뒤흔든다. 미뢰(味蕾)에 저장된 맛의 DNA가 일제히 환호한다. 이어 부드럽고 촉촉한 속살이 기다린다. 바삭거림과 부드러움의 앙상블. 여기서 피어나는 담백한 맛.

프랑스 사람은 바게트 없이 하루도 못 산다. 그런 프랑스 사람이라도 껍질과 속살을 대하는 태도는 연령대에 따라 조금 다른 것 같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 중에는 바삭거리는 껍질만을 먹고 말랑거리는 속살은 식사 중 뭉쳐두었다가 새들한테 나눠주기도 한다. 다이어트 중인 젊은 여성들은 살찐다고 속살을 먹지 않기도 한다. 바게트는 곧 바삭거리는 껍질 맛이라는 뜻이다.

바게트는 밀가루, 소금, 효모, 물 4가지만으로 만든다. 특별한 첨가물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바삭거리는 껍질과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속살이 어우러지는 순수한 맛이 일품이다. 뒷맛까지 깊고 은은하다. 이 맛을 알면 다른 빵을 먹지 못한다.

나이 마흔에 바게트 맛을 알게 된 나. 바게트에 관해서 나는 여전히 왕초보다. 가끔 바게트에 버터를 발라 아침 식사를 한다. 그때마다 감동한다. 그동안 이런 오묘한 맛을 모르고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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