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중대선거구제 ‘설계’가 관건이다

2023. 1. 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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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소선거구제 문제점 해소 위해

2~4인 선거구제 논의 활성화

대표성 높아지나 부작용 우려

2인 선거구에선 양대 정당 대결

선거구 제도만으론 개혁 한계

장단점 면밀히 따져 묘책 내야

새해 들어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역 특성에 따라 (국회의원을) 2∼4명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중대(中大)선거구제를 언급한 이후 정치권에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그런데 중대선거구제가 지향하는 목적이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중대선거구제의 목적 간에는 상호 충돌하는 요소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취지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나타나는 당선 의원의 대표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1위 당선을 위한 치열한 정당 간 대결을 완화해 보자는 두 가지 사항으로 대강 정리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목적이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어느 정도 달성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선거구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과 2인·3인·4인 선거구의 상대적 비율 등에 따라 중대선거구제의 효과는 달리 나타날 것이다. 양대 정당이 백중세를 보여 현행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드러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런 문제를 따져 보자.

유효투표 수가 모두 똑같은 A, B, C 3개의 소선거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수도권 A선거구에서 가당, 나당, 다당 후보가 각각 유효투표의 55%, 40%, 5%를 득표해 가당 후보가 당선되고, B선거구에서는 3당 후보가 순서대로 40%, 55%, 5%를 득표해 나당 후보가 당선되고, 마지막으로 C선거구에서는 순서대로 55%, 40%, 5%를 득표해 가당 후보가 또 당선됐다고 가정해 보자. A, B, C선거구는 모두 45%의 사표율을 보여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드러낸다.

그런데 2인 또는 3인 선거구제가 도입돼 시나 구 등 행정단위에 따라 위의 두 선거구를 합친 A+B선거구나 3개 선거구를 모두 합친 A+B+C선거구가 만들어지고, 정당 복수공천이 금지된 중대선거구제 하의 선거에서 3개 정당의 후보가 소선거구 하의 지지자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2인 선거구인 A+B선거구에서는 거대 양당인 가당과 나당 후보가 각각 47.5%의 득표율로 동반 당선될 것이다. 그리고 3인 선거구인 A+B+C선거구에서는 가당 후보가 50%, 나당 후보는 45%, 군소정당인 다당 후보는 5%의 득표율로 당선될 것이다. 사표(死票)가 대거 사라지면서 대표성은 분명히 높아졌다.

그러면 이러한 대표성의 제고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3인 이상의 선거구가 많지 않은 경우 중대선거구제의 대표성 제고는 A+B형 2인 선거구를 통해 사실상 양대 정당의 쌍두 지배체제를 고착화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제21대 총선을 토대로 해서 각 행정구를 중심으로 중대선거구를 만든다고 할 경우 서울의 3인 선거구 후보는 갑을병으로 분구돼 있는 노원·강서·강남·송파구 등 4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2인 선거구가 될 것이다. 경기도는 통합을 통해 3인 이상 선거구를 만들 여지가 더 크기는 하지만, 21대 총선 선거구를 통해 볼 때 당장 3∼5인 선거구 후보는 남양주·부천·수원 등 몇 개 안 된다. 더구나 가정을 조금 바꿔 3인 이상 선거구에서 정당 복수공천이 허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양대 정당의 선거 지배 현상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한편, 이러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과연 정당 간 정치적 대립은 해소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적 대결 상황에서는 다인 선거구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주요 양대 정당 간 대결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최소한 1, 2위 동반 당선이 보장되는 다인(多人) 선거구의 특성상 소선거구에서 그나마 기대해 볼 수 있었던 중도 지향형 후보가 등장할 인센티브는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사실상 보장되는 주요 정당의 후보들은 오히려 열혈 지지자를 결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선명성 경쟁이 판을 치는 본선의 경선화 현상이 도래할 수도 있어 정당 간 대립 현상이 더 심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치권이 무슨 묘책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중대선거구제는 정치적 대립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각 정당의 대표성을 골고루 높이기에는 역부족인 선거제도로 보인다. 아니, 선거제도 개혁만으로 이런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믿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매우 어려운 작업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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