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성적이냐, 팀 개편이냐’ 집안싸움… 선수·팬들만 상처

배구팬들이 11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의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4라운드를 찾아 ‘팬들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행복 배구’ 라고 적힌 클래퍼를 펼쳐 보이고 있다. 뉴시스

■ 선장없이 표류하는 흥국생명 ‘총체적 난국’

김연경, 이번 시즌 끝으로 FA

현장감독은 ‘베테랑 중심’ 운영

구단, 젊은선수로 리빌딩 ‘충돌’

V리그 출범후 잦은 감독 교체

배구계 “지도자 쉽게 봐” 지적

팬들은 “선수들 응원하고 지지”

경질 사태에도 변함없는 모습

인천=오해원 기자 ohwwho@munhwa.com

감독·단장의 돌연한 경질 사태 이후 총체적 난국에 빠진 흥국생명이 배구계 전체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선수단 개편이냐, 눈앞의 성적이냐를 두고 벌어진 코트 밖 싸움의 피해를 선수와 팬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023년 1월 현재 V리그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여자부 흥국생명이다. 지난 2일 권순찬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 이후 차기 감독 선임 등으로 연일 시끄럽다. 흥국생명은 구단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리그 2위를 이끌던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일반적인 상식에선 이해가 가지 않는 인사였다. 흥국생명은 2005년 V리그가 출범한 이후 감독 교체가 잦았던 ‘전력’이 있다. 시즌 중 감독을 경질한 게 올 시즌을 포함해 네 차례나 된다. 배구계 일각에서 “흥국생명이 지도자를 너무 쉽게 본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이번 흥국생명 ‘윗선’과 권 감독의 갈등은 지향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에이스’ 김연경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 가운데 윗선은 미래 전력 구축을 위해 어린 선수의 출전을 바랐다. 반면 권 감독은 김연경, 김해란 등 베테랑을 중심으로 여자부 2위에 오른 만큼 현 체제에 변화를 줄 이유가 없었다. 양 측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지난 5일엔 권 감독과 함께 경질된 김여일 단장의 후임으로 부임한 신용준 단장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권 감독의 경질 이유가 전술 활용에 대한 팬들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명 때문이다. 김연경과 외국인 선수 옐레나가 나란히 앞에 서기에 파괴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으로, 쉽게 말하자면 세계적인 공격수 김연경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둘을 전위에 두며 블로킹을 높이는 전술로 재미를 보고 있다. 권 감독의 경질 이후 이영수 전 감독대행과 김대경 감독대행도 같은 전술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 11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현대건설과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2-3으로 졌지만 옐레나(31점)와 김연경(24점)이 55점을 합작하며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김기중 감독의 부임 번복 이후 흥국생명은 여전히 후임 사령탑 선임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 배구 관계자는 “프로팀 감독 자리를 원하는 지도자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흥국생명은 누가 가도 환영받기 어렵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연경도 “회사는 말을 잘 듣는 감독님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다음 감독님이 오신다고 해도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할 만큼 흥국생명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다.

흥국생명은 당분간 김 감독대행이 지휘한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처방이 될 수 없다. 김 감독대행은 “제가 나가는 순간 (흥국생명엔) 배구를 할 수 있는 코칭스태프가 없다. 선수를 위해서라도 일단 남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차기 감독을 찾고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너무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는 동안 김 감독대행이 잘 이끌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흥국생명 홈 경기엔 올 시즌 V리그 평균 관중(1906명)의 두 배가 넘는 4509명의 배구팬이 모였다. 흥국생명 응원석에 앉은 많은 팬은 여전히 ‘행복 배구’, ‘팬들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보라색 클래퍼를 들고 응원했다. 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에도 변함없는 팬의 지지를 확인한 선수들은 패배 후 관중석을 향해 허리 숙여 고마움을 표현했다.

V리그 최고 인기팀이라는 칭호는 영원하지 않다. 흥국생명이 다른 팀이 부러워하는 지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빠르고 투명한 수습이 필요하다. 자칫 선수도, 팬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배구계의 일치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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