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사랑은 내가 최고” 한글 배우는 지구촌 톡·톡·톡 [헬로 한글]
이집트 라나, 한국과 문화가교 일하는 게 꿈
켈 쿠 “자막 없이 K드라마 집중하고 싶었다”
“K팝 즐겨들으려” “어순 같고 쉬워 보여서”
배우는 이유는 제각각...외국인 관심 급증
한국 대중문화의 폭발적인 인기로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막 없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K팝 음악을 즐기기 위해, 혹은 장학금이나 취업을 위해 배우는 등등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매년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자 수는 33만 여명으로, 지난 2014년 20만 여명에 비해 13만명이나 늘었다. 이중 19만 1000여명이 해외에서 시험을 치렀다. 코리아헤럴드는 창간 70주년 특별기획 ‘헬로 한글’ 시리즈를 위해 일본과 베트남, 카메룬, 루마니아 등 세계 곳곳의 한국어 학습자들과 한글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집트에서 온 라나 엘메트왈리(25)는 지난 2009년쯤부터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당시는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라나 주변에 한국 콘텐츠를 보는 이가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미국 영화나 이집트 영화를 봤어요. 이집트 TV에 한국 프로그램이 방영되진 않았죠. 내성적이었던 저는 온라인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고 수많은 한국 프로그램과 영화, 웹툰을 보게 되었다”고 이는 자연스레 한국어 공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라나는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 문화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녀는 “한국 프로그램이 이집트에서 인기를 끌게 된 건 2020년부터”라며 “이제는 이집트 TV에서 한국 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극장에선 한국 영화를 상영한다”고 말했다. 수 년 전 라나가 한국 대중문화 동호회에 가입했을 땐 회원 수가 50명 이하였으나 이제는 동호회 총회를 하려면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야 할 정도. 예전에는 한국 대중문화에 전혀 관심이 없던 친구들이 요즘은 라나에게 뭘 보고 뭘 들어야 하냐고 물어온다. 이제 라나의 꿈은 국제관계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과 이집트의 문화교류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다.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인근에 거주하는 18세 대학 신입생인 일라이아스 사나브리아는 한국 대중문화 광인 여자친구와 함께 약 5개월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여자친구가 저랑 있을 때 항상 ‘런닝맨’을 보고 있어서 저도 같이 보게 됐어요. 전에 한국 노래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한국 노랜 줄 몰랐죠. 이제는 트와이스를 즐겨 듣고 ‘런닝맨’에서 이광수를 제일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인근 지역 교육센터에 무료 한국어 강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재미있을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학업과 동시에 웹프로그래머 일도 하고 있는 일라이아스는 졸업 후 철학이나 심리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어에 빠져, 한글이 잔뜩 적힌 커다란 종이가 그의 방 벽에 붙어 있다.
싱가포르의 켈 쿠가 퇴근 후 한국어 수업을 받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드라마이다. 자막을 읽을 필요 없이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건축 적산사(quantity surveyor)인 그녀의 직업 상 한국어 능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녀는 항상 한국 식당에서 한국어로 음식을 주문하고 언젠가 한국에 가면 한국인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상상을 한다. 그는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전통, 모던한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카페나 패션, 길거리 공연, 팝업스토어나 미술 전시 등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들의 높은 미적 감각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일본 동경의 케이오 기주쿠 여자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하시모토 리오는 2년 전 한글을 배웠고 작년 4월 인근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문법과 표현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케이팝을 좋아해서 한국 노래를 자주 듣고 있었기에 원래 한국어에 흥미가 있었다는 그녀는 매일 한국 노래나 영상을 들으며 한국어 듣기 연습을 하고 있다. 한식도 좋아해서 가끔 집에서 전을 부쳐 먹지만,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리오는 진학 예정인 대학에 한국 대학과의 교환 학생 제도가 있어 이를 통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며, “한일 사이에는 조금 과제가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한국 대중 문화의 매력이 종종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곤 하지만, 한국어를 진지하게 공부하게 되는 동기는 보통 장학금이나 한국 또는 해외 한국 기업의 취업 기회이다.
네팔의 림부 아난다(27)는 그가 13살 때 여행사에서 통역으로 일하는 아는 형으로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형의 사무실에 자주 방문하여 한국인들과 대화하고 같이 여행을 가기도 했다. 2013년 카트만두의 언어 대학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한국어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졸업하기 직전에 고용허가제(EPS) 시험을 보고 취업하러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5년을 일한 아난다는 네팔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는대로 다시 한국에 돌아가 공부하고자 한다.
아난다는 “한국의 역사와 직장생활 문화가 가장 관심이 가고 놀라웠습니다. 60여년 만에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기까지 국민들의 나라를 향한 사랑과 희생정신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 사람들의 직장 생활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직장생활이 조금 힘들었지만 모두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니 나라가 이렇게 발전될 수 밖에 없었구나 싶었다”고 덧붙였다.
케냐의 오도요 윌슨 오코트는 자신에게 한국은 “희망의 등불”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고통으로 가득찬” 한국의 현대 역사를 공부했다며, 현재의 한국은 비록 완벽하진 않아도,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자립 가능한 국가가 되었기에 현재 어려운 나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윌슨은 나이로비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과 케냐, 나아가서는 한국과 아프리카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좋은 동료들과 일한 덕분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카메룬에서 온 마누엘라 아토는 프랑스어-영어 프리랜스 통역사로 일하던 2017년 카메룬의 수도인 야운데를 공연차 방문한 한국의 한 극단 통역을 맡으면서 처음 한국 대사관과 인연이 닿았다. 이듬해 그녀는 주카메룬 한국 대사의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고, 대사가 한국에 있는 장학생 프로그램에 대해 알려주었다.
마누엘라는 처음엔 한국에서 유학할 만큼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망설였으나 대사관의 다른 동료가 한국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고, 그녀 덕분에 한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석사과정을 하기 위해 작년 8월 한국에 왔다.
한국어는 일본어, 터키어, 네팔어 등과는 어순이나 어휘, 문법에 있어 유사성이 있는 반면 서구의 언어들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의 알렉스 트리테안과 러시아의 올가 데비앗키나에겐 비교적 간단한 한글 덕분에 한국어가 중국어나 일본어보다는 훨씬 쉬워 보였다고 한다.
터키에서 온 수메이예 코달락은 과거 간호사로 일하다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에 부쳐 다른 일을 알아보던 중 평소 언어에 관심이 많던 적성을 살려 대학의 한국어학과로 다시 입학했다. 한국어가 터키어와 어순이 같고 중국어, 일본어보다 덜 어려워 보여 선택하게 되었고, 어머니가 한국 드라마를, 여동생은 슈퍼주니어를 좋아해서 집 안에 항상 한국 드라마나 노래가 틀어져 있었다고 한다.
충남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던 중 한국 음운학에 흥미를 갖게 된 수메이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문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졸업 후 한국의 현대 소설을 터키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코리아헤럴드=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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