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일할 젊은이가 없다”…총리가 나서 ‘임금 인상’ 읍소하는 일본
[앵커]
이번 설 연휴 일본 여행 가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무비자에, 엔화 값도 상대적으로 싸고요.
그런데 정작 일본 국민들은 '고물가'로 신음하고 있답니다.
'지구촌 돋보기' 오늘은 일본 속사정 들여다 봅니다.
홍석우 기자, 일본 상황이 어느 정도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요?
[기자]
일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있었는데요.
'일본' 하면, '라면'이죠.
일본의 유명 축구선수가 자신의 SNS에 올린 라면 사진인데요.
"730엔이면 너무 저렴하다, 이젠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2천 엔을 제시했는데, 우리 돈으로 만 2천 원을 더 올리자고 한 거죠.
불과 이틀 만에 조회 수가 천8백만 건을 기록했고요.
값을 올려야 한단 의견도 있었지만, 지금도 고물가인데 버티기 힘들 거란 의견이 많았습니다.
[앵커]
버티기 힘들 거다...
상황이 심각한가 보죠?
[기자]
네, 90년대에 일본 가면 라면값이 우리 돈 만 원에 육박해 깜짝 놀라곤 했는데요.
수십 년째 그 가격,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어요.
일본 도쿄 어시장의 새해 첫 참치 경매 모습인데요.
한 마리 최고가가 우리 돈 3억 5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지난해보다 값이 두 배 이상 뛴 건데, 두 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하나는 경기 회복 신호다, 다른 하나는 물가가 두 배 올랐다.
실제 지난달 도쿄 소비자물가는 1년 새 4% 상승했습니다.
지난 40여 년간 이렇게 올랐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최고 수준입니다.
[앵커]
왜 이렇게나 오른 거죠?
[기자]
식료품과 가스, 전기요금이 크게 뛰면서 물가를 끌어 올렸습니다.
저금리 정책 유지하면서 엔화 가치 하락했고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까지 더해졌습니다.
일본 식품업체들, 올해 4월까지 7천 개가 넘는 품목의 가격을 일제히 올린다고 했는데요.
올해 물가 오름세는 더 가파를 거로 보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는 어떤 입장인가요?
[기자]
기시다 일본 총리, 신년 기자회견과 노사 단체들 신년회에서요.
'임금 인상'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들어보시죠.
[기시다 후미오/일본 총리 : "꼭 물가상승률을 넘는 임금 인상을 부탁드립니다. 올해 임금을 올릴 힘은 여러분(기업인)에게 있습니다."]
[앵커]
총리가 직접 나서 기업들에 '임금 올려달라'고 부탁했군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기자]
이게 처음은 아닙니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 동안 물가도 안 올랐고, 임금도 잘 안 올랐죠.
그래서 일본에는 '관제 춘투'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부와 노조가 함께 재계에 임금 인상을 대놓고 요구해 온 건데요.
고(故) 아베 전 총리가 재임할 때부터니까, 10년이 다 돼 가거든요.
정부는 줄곧 3% 이상 인상을 요구해 왔는데, 임금 인상률이 2.5%를 넘었던 적도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앵커]
총리의 읍소대로 이번엔 기업들이 월급을 예전보다는 많이 올려줄까요?
[기자]
일본 유니클로의 경우 3월부터 직원 연봉을 최대 40% 인상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론 일본 최대 노조가 5%대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요.
재계도 적극적인 검토를 약속하긴 했습니다만, 아직 미지수입니다.
일본 기업 99%가 중소기업인데, 경기 침체로 사정이 어렵습니다.
지난해 도산한 기업도 6천 개로 3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고요.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지난해 11월 실질 임금이 전년 대비 3.8%나 감소한 상황에서요.
올해 임금 인상률도 2%대를 벗어나지 못할 거란 예상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 정도로는 물가 상승을 커버하지 못해 실질 임금 하락 추이는 이어질 것으로 아사히신문은 내다봤습니다.
[앵커]
이러면 총리의 정치적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기자]
네, 월급 문제는 기시다 내각을 흔들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올해 상반기에 총리가 사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국민 절반입니다.
이 분위기 바꾸려면 올해 월급 반드시 올려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앵커]
임금은 안 오르는데, 정작 일할 사람도 없는 게 또 문제라면서요?
[기자]
네, 저출산, 고령화로 일본은 이미 구직보다 기업의 구인이 더 많은 상황입니다.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 2천8백8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14년째 감소 중인데요.
노무라 연구소는 2030년쯤이면 일본 노동력의 15%에 해당하는 천47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부족한 일손을 메워주던 외국인 노동자들도 엔화 약세로 실질 임금이 줄자 일본을 떠나고 있는데요.
일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반도체'도 '인재 확보'가 핵심인데,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다른 나라, 기업들에 밀리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가 임금 인상과 함께 저출산 대책을 주요 과제로 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앵커]
정치, 경제, 군사력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넘어섰단 소식 종종 전해드렸지만요.
'일본의 현재는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말도 있듯, 홍 기자 이야기 듣고 보니 일본의 고민이 더 와닿는 것 같습니다.
홍석우 기자 (museh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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