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美 서부 겨울폭풍 강타…한인 거주 아파트 30m 나무 덮쳐
4일 이어 10일에도 수십m 나무 5그루 뿌리째 뽑혀…"폭탄 터진 줄"
샌라몬 지역 한인 "차 안 갑자기 물 차올라…창문으로 빠져나와"
(캠벨[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새벽에 갑자기 '쾅'하는 굉음 소리에 놀라 잠을 깨서 봤더니 지붕이 내려앉아 있었어요. 지붕이 무너질까 조마조마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어요"
1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캠벨의 2층짜리 한 아파트. 며칠째 미 서부 지역에 계속된 거센 폭풍우는 한풀 꺾인 듯했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작업 인부들이 눈에 띄었다. 폭풍우에 넘어진 나무들을 걷어내느라 전기톱으로 기둥을 자르고 있었다.
아파트 뒤편에 이르자 키가 30m는 돼 보이는 나무가 밑동을 드러낸 채 그대로 넘어져 있었다. 이 나무는 아파트 지붕을 '말 그대로' 덮치고 있었다.
지붕은 찌그러진 채 주저앉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이 거대한 기둥이 덮친 집에서는 어르신 한 명이 겁에 질린 채 문을 열고 나왔다.
미국에 거주한 지 약 30년 된 고모(78) 씨였다. 홀로 이 곳에 세 들어 사는 고 씨가 날벼락을 맞은 것은 10일 새벽이었다고 했다.
고 씨는 "새벽 1시 정도 됐을까. 2층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났다"며 "잠에서 깨보니 이렇게 돼 있었다"고 나무 기둥을 가리켰다.
이 아파트는 2층짜리여서 고 씨는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도 했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서 외부인의 아파트 내 출입과 근거리 사진 촬영을 막아내부 촬영을 할 수는 없었다. 고 씨는 "지붕이 완전히 쪼개졌고, 비는 새고 있어서 밑에 큰 바가지를 받쳐 두고 있다"며 집 내부 상황을 전했다.
이 나무 기둥이 고 씨 집을 덮친 것은 36시간이 넘었지만, 그대로 방치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파트에서 나무 기둥이 덮친 것은 비단 고 씨 집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곳곳에 밑동이 잘리거나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또 다른 나무 기둥은 인부들에 의해 치워지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나무 기둥은 고씨 집처럼 누군가의 지붕을 삼키고 있었다.
이 아파트에는 20∼30m부터, 50m가 넘는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어 평소에는 그늘을 만들어줬는데, 전례 없는 폭풍우에 흉기가 되고 만 것이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모 씨는 "아파트에는 모두 100여 가구가 사는데, 한인들이 그중 절반인 50가구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4일에 나무 5그루가 쓰러져 인부들이 며칠간에 걸쳐 간신히 걷어냈는데, 10일 새벽에 다시 5그루가 아파트를 덮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제 새벽에는 정말 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3주째 겨울폭풍이 미 서부지역을 강타하면서 이처럼 한인들의 피해도 이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한 사례는 알려지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이스트베이에 위치한 샌라몬 지역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이곳에 사는 케빈 리 씨는 지난해 말에 큰 화를 당할 뻔했다고 했다.
그는 "차 안에 있는데 비가 막 쏟아지더니 순식간에 물이 어깨까지 차올랐다. 차 문을 열 수 없어 창문을 통해 빠져나왔다"고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치면서 전봇대가 넘어져 정전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10시간 혹은 24시간 넘게 전기 공급이 끊기기도 했다.
이에 복구 작업을 위해 도로 곳곳에서는 '출입 통제'를 알리는 팻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작년 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폭우는 미 서부 지역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인들은 입을 모았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이모 씨는 "30년 동안 이곳에 살았지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산타클라라에 사는 우모 씨는 "한 달 동안 강수량이 많은 적은 있지만, 며칠 사이에 폭우가 내린 것은 드물다"며 "곳곳에 신호등도 많이 고장 났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수년간 가뭄에 시달렸던 미 서부 지역이지만, 올해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폭풍에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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