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로만 존재하던 '혁신 원자로' 현실화하겠다"
"선진원자로를 개발하는 전담 조직을 신설해 지금까지 연구개발이 이뤄졌지만 설계도로만 존재했던 선진 원자로인 초고온가스로(VHTR)를 실물로 보게 할 것입니다. ."
10일 대전시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만난 주한규 원자력연 원장은 조직개편 구상을 마무리지었다고 설명하며 선진원자로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개편으로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는 '선진원자로연구소'로 이름이 바뀌며 소내에는 '선진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연구부'와 '선진핵연료기술연구부'가 신설될 예정이다. 선진원자로 개발을 전면에 내세운 주 원장의 의지가 엿보였다. 이번 개편 결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의 논의를 거쳐 조만간 확정된다.
● "원자로는 전기만 만드는 것 아냐"
주 원장은 "미국 정부의 경우 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와 헬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초고온가스로(VHTR)에 투자하고 있다"며 "한국도 비경수형 선진원자로를 개발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이 아닌 냉각재를 사용하는 비경수형 원자로는 안전한 원자로로 평가받는다. 물보다 끓는점이 높은 냉각재를 사용하면 압력을 높일 필요가 없어 부피팽창으로 인한 사고를 줄일 수 있다.
국내에서도 SFR과 VHTR에 대한 요소 기술은 개발돼 있는 상황이다. VHTR의 경우 설계도까지 만들어져 있다. 주 원장은 타국에서 이미 가동하고 있거나 가동한 적 있는 VHTR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중국의 VHTR인 'HTR-PM'은 2021년 9월 처음 임계점에 도달했고 영국과 독일에서도 실험용 VHTR을 운영한 바 있다.
VHTR은 전기와 수소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소를 만들어내려면 물 분자에서 수소 원자를 분리해야 한다. 보통은 전기에너지로 전기분해를 하기 때문에 수소에너지의 친환경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면 훨씬 저렴하고 친환경적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주 원장은 "원전이 만드는 열에너지의 3분의 1만 전기에너지로 변환된다"며 "남은 열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원장은 선진원자로가 개발되면 '원자로=전기 생산'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VHTR을 포스코 등 수소환원제철소에 설치해 발전 대신 열만 공급해주는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약 40조원을 들여 석탄 대신 수소로 철을 만드는 수소환원제철소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원자력이 만드는 열에너지로 바닷물을 끓여 민물을 만드는 해수담수화 등 열에너지 자체를 산업 공정에 활용할 수도 있다.
● 선진원자로 개발까지 '스마트'로 틈새시장 노린다
SMR을 비롯한 선진원자로는 아직 연구개발(R&D)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 원장은 "그 빈자리는 이미 개발된 스마트(SMART)가 메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소형 원자로다. 원자로의 주요 기기를 압력용기에 집어넣은 형태로 물이 아닌 냉각재를 사용하거나 펌프 없이 작동하는 SMR에 비해 혁신성은 떨어지지만 SMR이 개발될 때까지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셰일층의 원유를 채굴하는데 스마트 원자로가 만드는 고온·고압의 증기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주 원장은 "지금은 가스나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데 시추공 위치가 오지에 있다보니 연료를 수송하는 것 자체도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며 "스마트는 연료를 1년에 한 번만 장전하면 돼 가스나 석유를 이용하는 것보다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주 원장은 "아직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원하는 가격과 공급가의 차이가 있는데 민간과 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2월에 앨버타주 협상단이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신형 SMR이 개발돼도 초기에는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10년 정도는 스마트 수출을 추진해 틈새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원장은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가 실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연구소 개발 성과가 도면 형태로 남은 것들이 많다"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성과가 실물화 돼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젊은 연구원들은 예전보다 더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낸다는 사실을 교수로 재직할 때 알게 됐다"며 "이들이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동기부여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원자로 연구개발을 위해 새로운 기술도 적극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기술들을 원자력에도 적용하겠다"며 "로봇을 이용해 원자로의 상태를 파악하거나 3D 프린팅으로 사고저항성 연료를 만드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